[5]예수 안 믿으면 손해보는 47가지 이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41. 예수를 믿으면 안전운전을 약속 받습니다.

자동차 세상이 되었습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이제 자동차 없는 가정이 드문 세상이라는 뜻이지요.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하지요?우리 자동차를 세계 각국에 많이 수출하고 있는 것도 자랑스런 일입니다. 자동차는 매우 쓸모가 많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결코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통사고가 잦기로 세계 1위를 다툰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의 수가 한국전쟁 때 죽은 사람의 수보다 많다는 통계 앞에서 ‘아, 이제는 차사고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로구나.’ 하는 우려를 누구나 갖게 됩니다. 자동차 사고 중에는 운전자 본인의 부주의로 일어나는 사고가 있고, 다른 차의과실로 인한 사고가 있으며 아울러 도로 여건 등 환경시설 측면의 부실로 인한 사고와 자동차 제조 및 정비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또 있습니다. 어느 경우라도 귀한 인명이 죽고 다친다는 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한테 예수를 믿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자동차 사고 요인을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예수를 믿으면 우선 운전자 각자가 자만하지 않기 때문에 과속이나 난폭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내 개인의 일시적인 기분풀이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고운 심성을 예수님으로부터배우게 되기 때문이지요. 너나없이 안정된 정서상태에서 자중자애하는 운행을 한다면 누구나안전운전에 관한 한 일등시민이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 일이 가능합니다. 또 예수를 믿으면 양보를 잘 하게 됩니다. 길가에서 싸움질하는 남세스런 광경도 자연히 사라지게 됩니다.갑자기 좁아진 길에서도 양보를 잘 하여 순리적으로 교행하면 호리병현상 등 답답한 교통체증이 사라집니다.음주운전과 같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예비 살인행위’도 하루아침에 말끔히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도로상에서 보행인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며 항상 조심스런 운전을 하게 됩니다. 법규를 속이는 무면허 운전도 하지 않게 됩니다.그리고 예수 믿는 이들이 도로공사를 하거나 안전시설공사를 하게 되면 사회이웃에 봉사한다는 마음가짐 아래 그야말로 양심적으로 성심을 다해서 작업에 임할 터이기 때문에 사고 요인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차를 제조하거나 정비하는 이들도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의 생명존중 사상에 입각해서 보다 철저하고 꼼꼼하고 완벽한 작업을 할 것이기 때문에 차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발생 확률은 그만큼 낮아집니다. 모두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도 서구 선진국들처럼 안전하고쾌적한 ‘자동차 천국’을 이루리라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42. 예수를 믿으면 ‘낮은 곳’ 의 귀함을 아는 인간이 됩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지구상의 각양각색 거의 모든 인류는 이스라엘 땅 가나안 목수 집에서 났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사형을 당한 한 청년의 이름 앞에 꼼짝 못하고 엎드려 그가 남긴 말씀을 경청하면서 경배하기를 마지않아 왔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권세가 높은 이도 낮은 이도, 학식을 많이 쌓은 이도, 무식한 이도???. 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피부가 검거나 누렇거나 희거나 역시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씀이 적힌 책은 지난십 수세기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강국을 자임하는 미합중국의 대통령들도 대통령 취임선서를 할 때 그 책 위에 엄숙히 손을 얹고 선서를 합니다.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그 책’ 에적힌 말씀에 순종한 민족은 내내 부강해 왔고, ‘그 책’ 을 부인하거나 부정한 민족은 예외 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청년의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독교의 창시자로 세상에 오신 ‘왕 중의 왕’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가 인류의 원죄 대속을 담보로 그 귀한 목숨을 바치셨지만, 남기신 진리의 말씀을 통해 인류된 우리 인간 하나 하나가 과연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하고도 올바른 길을 똑똑히 제시해 주셨습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그 모든 말씀들 가운데 실증( ??이 되지 않은 말씀의경우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일러 복음이라 부르는 까닭이 그러합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많은 복음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그 중에서도 예수사상의 가장 핵심이 되는 말씀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아마 “누구든지 나를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는 명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낮은 곳’ 의 의미는 주어진 한 세상을 참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껍데기 성취의 생명은 매우 짧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준한 진리 된 성공은 영원히 빛나는 횃불처럼 내내 세상을 밝게 비춥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 중의 첫번째가 바로 이 진리 된 삶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를 믿어서 ‘낮은 곳’ 의 귀한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한 최고등급의 인간입니다.43. 예수를 믿으면 ‘순한 양’ 이 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양치기, 즉 선한 목자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목자를 자처하신 것은 우리 인간을 순한 양으로 보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느 한 편 자신들을 돌아보면 우리가 과연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순한 양으로서의 자격이 있긴 있는 것인지 부끄러워질 때가 없지 않습니다.때로 야수의 호전적 공격본능을 발휘하기도 하고, 뱀과 같은 교활함으로 꾀를 쓸 때가 많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선한 목자를 자처하셨으므로 우리 양된 인간이 광야의 위해 요인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안전한 삶을 살려면 죽으나 사나 목자의 인도를 따라 순한 양이 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고 봅니다. 즉,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양이라는 착하고 유익한 동물은 신석기시대 초두, 즉 예수 나시기 9천년 전부터 인간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어 왔습니다. 양의 가축화는 농경문명의 발생과정과 거의 시기를 같이하고 있으며, 그 후 고대 오리엔트문명 성립에 있어 그 경제적 배경을 이루는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처음에는 수렵동물을 대신한 식량원의 하나로 주로 양고기가 이용되어 왔으나 차츰 젖의 이용도도 높아지게 되었습니다.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예수 나시기 3천 년 전부터 치즈나 발효유 등 양의 유제품이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초식동물로서 성질이 순한 양은 제 몸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줍니다. 털, 고기, 가죽, 뼈로부터 배설물에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그 쓰임새가 넓습니다.우리 인간을 위해 끝없이 베푸는 삶을 사는 동물이 바로 양인데 무엇보다도 양은 성질이 착하여 그 어떤 동물도 해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우리는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원래가 양과 같은 존재, 즉 대체로 착한 천성은 지녔으되 자칫 교만으로 인해 길을 잃기 쉽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 그 본분 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예수를 믿으면 선한 목자의 인도 아래 말씀에 순종하는 진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44. 예수를 믿으면 ‘나무’ 같은 사람이 됩니다.

옛 시인과 철인들은 가장 완벽한 인격에 도달한 인간의 경지를 곧잘 나무에 비유한 일이 많았습니다. 똑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살면서도 나무는 인간과 달리 ‘오로지 베푸는 존재’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더운 이에게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추운 이에게는 바람을 막아 주고, 새들에게는 둥지 틀 가지를 주고, 제가 뿌리를 내린 땅으로 하여금 빗물사태가 나지 않도록 뿌리로 얽어 도와줍니다.욕심 많은 인간에게도 나무는 끝없이 베풀기만 합니다. 제 몸 베어 목재로 주고 땔감으로 주고, 제 과실 따서 양식으로 주고, 온몸의 잎으로는 고른 숨 맑게 쉬며 살라고 신선한 산소를 내내뿜어 줍니다. 그러다가 낙엽이 지면 그 낙엽이 썩어서 또 온 땅을 기름지게 해줍니다.그 모든 좋은 일을 다 하면서도 나무는 단 한마디의 말을 하지 아니합니다. 제 몸 베이고,잘리우고, 빼앗기고, 썩히우면서도 말 한마디를 하지 아니한 채 다만 베풀 뿐입니다.생색을 농( %)하는 일이 결코 단 한 번도 없습니다.그러니 이를 인간의 삶에 견준다면 나무의 생애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과 맥이똑같은 것입니다.될 수만 있으면 나무 같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나무는 제 분수에 만족할 줄 압니다. 나무는 왜 나무로 태어났는가를 묻거나 탓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합니다. 혹여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따사로운 햇살을 좀더 받을까, 골짝에 내려서면 시원한 물을 좀더 마실까 하면서 새로운 자리나 기회를 엿보는 일도 없습니다. 언제나 제게 주어진 만큼의 물과바람과 태양과 흙의 겸손한 아들일 뿐입니다.언제나 두 팔의 가지를 하늘로 세워 올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자세로 살 뿐입니다.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가진 것들에게 오로지 유익한 존재로 제 삶을 살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무를 인간 가까이 지으신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나무의 덕을 본받으라는 깊은 뜻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예수를 믿으면 나무와 같이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나무와 같이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나무와 같이 생색 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말없이 묵상하며 감사하는 자족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세상에 나무와 같은 사람이 많을 때 우리 인간의 숲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뭇 새들이 날아와 하나님의 생명주신 은혜를 찬미하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하겠지요. 그곳이 바로 땅 위에서 우리가 이루는 천국일 수 있겠지요. 우리 하나 하나가 예수를 믿기시작하면 바로 그 일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45. 예수를 믿으면 세상이 바로 천국입니다.

70살 된 할머니가 자신의 덧없는 늙음에 대해 혼자서 한탄하고 있을 때 90살 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어인 일로 90살 할머니는 자기보다 훨씬 더 의기양양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물론 허리도 더 꼬부라졌고 시력도 거의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어떻게 저토록 행복할 수 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볼 때도 사이다병 밑바닥처럼 두꺼운 돋보기 렌즈를 통해 비춰 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을 정도인 할머니였기 때문입니다.70살 할머니가 묻습니다.“돋보기가 좀 도움이 되시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90살 할머니는 더없이 행복한 미소로 대답합니다.

“내 눈을 주신 것도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신 이도 하나님이신데 내게 무엇하난들 불평할 자격이 있겠어요? 돋보기 볼 만한 시력을 남겨 주신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오.”

“아니, 시력을 다 가져가고 겨우 돋보기 하나를 던져준 셈인데 그것이 무에 고맙단 말씀예요?”그러자 90살 할머니는 70살 할머니의 손을 다정하게 꼭 잡고 말합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게 어찌 돋보기 하나뿐인가요? 하나님께서는 나이만큼 순리에 순응하면서 감사히 늙을 수 있는 귀한 지혜를 또 주셨잖아요?”70살 할머니는 크게 깨달은 바 있어 곧 90살 할머니를 따라 예수를 섬기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여생을 살게 되었다는 잔잔한 삶의 실화입니다.

위에 예 든 할머니의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열 배나 더 어려운 조건 속에 살면서도 열 배나 더 행복하게 사는 이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생명을 부여받아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만도 정말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삶의 조건이 불리하다 하여 세상을 비관하거나 자포자기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고귀함과 생명의 근원을 미처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사후의 내세만 기대하며 현실을 포기하는 대신, 나 하나의 작은 노력으로나마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고자 헌신하는 것 그리고 지금 세상에 살아서 숨쉴 수 있음만도그것이 무엇보다 큰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며행복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일 것입니다.세상을 천국으로 여기는 삶! 예수를 믿으면 그 일이 가능해집니다.46. 예수를 믿으면 선진사회가 빨리 옵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내구 연한은 보통 50년~100년이라는 데 어떻게 된 셈인지 우리나라에서만은 20년 미만에 아파트 재 건축이 시작됩니다.여간한 자원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은 지 7년밖에 안 되는 도심 한복판의 콘크리트 백화점 건물이 어느 날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도 합니다. 개통된 지 1년도 채 안 되는 도로나 교량, 터널 등을 끊임없이 보수하는 광경을 우리나라에서는 도처에 볼 수 있습니다. 수도관, 가스관, 전화선 등 지하매설물들은 아직도 통합관리 체제를 못 갖추고 있어 각각의 필요에 따라 일년 내내 도로가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실 사회의 현실입니다.그러니 개인의 주택이나 공장, 상업시설 등의 사정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듯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해 있는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가 바로 무슨 일이든지 대충대충 해내고 마는 이 부실 문제입니다.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듯이 이런 부실한 대충주의는 비단 건축구조물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우선 정치구조나 관행부터가 부실한 경우가 많고, 경제구조, 문화구조, 의식구조도 부실한 점이 참 많이 눈에 뜁니다. 어쩌면 사회 전반적인 부실 구조가 건축물의 부실 보다 더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부실한 건축물은 헐고 다시 지으면 되지만 문화구조나 의식구조가 부실,왜곡되어 있는 현상은 하루아침에 개선될 성질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사회의 모든 분야와함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구조가 우선 ‘부실공사’ 의 숙명적 한계로부터 벗어나서 합리의 원칙과 성실의 바탕 위에 다시 시작되어야하겠지요. 우리는 건국이래 여러 정권을 거쳐오는 동안 그야말로 갖가지의 다양한 정책대안들과 여러 가지 다양하고 새로운 법률들과 심지어는 극단적인 통치방식들까지 다 실험해 본 바 있지만, 그것들이 부실 사회의 본질을 바꿔 놓진 못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부실 사회를 하루 빨리 졸업하고 선진사회로 가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위정자나 행정관이나 국민들이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예수사상은 개인적 양심과 공동체적 성실이 그 근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부실 공사가 사라집니다. 도로 하나를 닦더라도 제대로 닦습니다. 집을 한 채 지어도 백 년 갈 집을 짓습니다.표지판 하나를 내걸어도 시민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만듭니다. 경제는 노사가 화합하여 합리적인 부의 균배를 이루는 쪽으로 정착됩니다. 예수의 공동체정신은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선진국입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 예수를 잘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47. 예수를 믿으면 정치를 잘 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말을 대단히 잘 하거나 글을 아주 잘 쓰거나 사람을 잘 다루거나 돈이 많거나 힘이 세거나 지식이 많거나 하면 그리고 그가 정치적인 열망과 집념을 갖고 있으면,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정치가의 위치에 앉아볼 수 있습니다. 말도 글도 용인술도 재력도 다 하나의 ‘힘’ 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정치적인 위치에 일시적으로 앉게 되었다 해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의를 제대로 섬겨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그것이 정치가입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하나같이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고 욕구가 다르고 수준이 다릅니다. 그 수많은 다름들을 각기 다른 귀한 구슬들로 여겨 그것을 하나의 성공적인 목걸이로 꿰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예수를 믿으면 비자금이니 통치자금이니 하는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됩니다. 윗물이 그렇게 맑으니 전 공직사회가 다 맑아져서 부정부패가 없어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같은 짝패가 아니라는 이유로 유능한 일꾼을 내쫓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여론을 부추겨 죄없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덮어씌우지도 않습니다. 욕심을 부려 정권을 연장하려 하는 꾀를 부리지도 않습니다. 물욕, 정권욕이 없으니 내 사람, 네 사람 편을 갈라 싸울 일도 없어집니다.지역감정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벼슬을 팔거나 벼슬을 짝패들끼리의 논공행상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관직은 오로지 봉사의 기회일 뿐, 벼슬이라는 말 자체를 의미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내 코앞의 이해타산보다는 백성들의 먼 장래를 먼저 걱정하여 정치를 합니다. 매사 정치논리로 상황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헌법에 명시된 대로 엄정한 3권 분립을 실천하는 정치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막강한 배경이 있으니 어떤 외세 앞에서도 당당한 자신감이 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스스로를 반성하는 솔직한 정치를 합니다. 이보다더 훌륭한 정치가가 있을 수 있을까요? 

단,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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