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기준과 천국 기준
교회는 교회가 존립하고 유지하고 번창하는 기준만 최종 제시하는 반면에, 천국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을 최종 제시하게 된다. 이 두 기준은 서로 상충되고 충돌된다.
교회가 되는 기준에는 회개가 필요치 않다. 도리어 회개 강요가 걸림돌이 된다. 회개하지 말고 충성하고 헌신하기만 하면 된다. 조직에 순응하고 권위에 복종할 마음이 있으면 훌륭한 교인이 된다. 이 교회 기준에서 제공하는 미신이 이것이다. 교회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기대 이상의 복을 내려준다는 것이다. 이로서 교회 내에서는, ‘교회 충성 자는 복 받다’에 해당되는 사례들만 지속적으로 모아진다.
이 교회에서의 죄인이란 ‘세상 복 못 받은 자들’이다. 이 교회에서의 의인이란 ‘세상 복을 넘치도록 받은 자’들이다.
여기에 비해서 천국의 기준은 회개다. 한 번 회개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회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평생을 두고 회개거리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회개의 기준은, 복음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복음으로 사는 천국보다 돈과 명예로 사는 세상을 더 좋아했습니다.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1-6)
천국에 기준에 의하면, “회개하고 예수님만 쳐다보는 자는 의인”이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에 아직도 미련이 있는 자는 회개 안 할 작정으로 사는 자이기에 “저주받은 자”로 규정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두 개의 기준 가운데 ‘천국의 기준’ 보다 ‘교회의 기준’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교회의 기준’ 뒤에 자신의 본심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천국의 기준’인 십자가 복음 앞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 죄가 되는 반면에, ‘교회의 기준’에서는 자신의 솜씨 여하에 따라서 ‘훌륭한 교인’으로 거듭(?) 태어날 걸로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장 못하는 환경을 싫어한다. 창세기 3:7에 보면, 인간의 조상 아담은 위장술의 명수였다. 그 본성을 필연적으로 이어받은 인간들은 자신을 위장하는 솜씨로 제 2의 자아를 장식하면서 살려고 한다. 그런데 십자가의 피 앞에서 그것이 통하지 아니하니, 사람들은 그 피에서 얼굴을 돌린다.
따라서 사람들은 위선이 통하지 않는 천국은 싫어하고 위장술이 통하는 교회 모임은 즐겁다.
‘천국의 기준’를 포기하므로서 천국 안 가려고 작심을 하는 집단,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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