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호두

소리와 호두

(요 1:23, 개역)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고백한 ‘소리’의 의미를 알려면 어떤 타자가 자신에게 등장해야 자신이 내뱉은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세례요한만 덩그렇게 홀로 남는다면 자신이 말한 그 ‘소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실하고 자신과 그 ‘소리’와의 관계성도 없어지고 만다.



‘소리’는 우리 인간이 흔히 아는 추상명사다. 인간 머릿속에 빙글빙글 돌지만, 그렇다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단어로서의 ‘소리’다. 이런 영역에 해당되는 단어들은 인간을 짜증나게 만든다. 그야말로 실증 그 자체다.



옛날에, 지금도 그렇지만,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호두를 나무에서 따서 껍질을 까고 햇빛에 잘 말려 그것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 사람에게 호두란 물질은 자신에게 타자(객체)이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신의 생각과 쓸쓸함을 달래주는 하나의 벗과 동료 혹은 놀이도구로서 호두다.



물론 손으로 만지는 촉감도 좋지만 그 촉감을 타고 자신의 뇌를 자극하는 그 쾌감과 사색은 그 사람만 알 것이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이 그 사람보고 ‘왜 매일같이 호두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의 왈, ‘그냥 좋아요. 이유 없어요!’



그러나 그런 인간이 손에 쥐어져 있던 그 애지중지한 호두를 강에 던져버리고, 환상도 아니고 허영도 아니지만 그러나 뭔가 자기 머릿속에 맴도는 그 ‘소리’란 단어로 인해 전혀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손으로 잡히지 않는 그 ‘소리’란 추상 단어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호두’로 세월을 누렸던 지난날의 만족된 삶과 생각 그리고 손바닥을 타고 밀려오는 촉감(쾌락=육감)이 하루아침에 깨어져 버린다. 자신이 정신병자로 미치지 않는 것이 차마 다행으로 여긴다.



인간은 뭔가 만져야 살 수 있는 괴물이다. 손과 눈으로 만지고 보지 않으면 미쳐버리는 것이 이미지(매일 바뀌는 선악의 모양과 형상)로 채색되어 있는 괴물이다. 요즈음 카이스트 학생들이 줄줄이 자살하는 것은 자신의 뇌세포와 신경조직에 손으로 잡히지 않거나 눈으로 보지만, 자신에게 실체로 다가오지 않는 것으로 인해 자기존재감의 원초적 우울증과, 허탈 그리고 원초적 상실감의 원인일 것이다.



타자가 있음으로 살았던 지난날의 자신의 자아가 어느 순간 타자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달고 자신 안의 자신을 찾아보기 시작하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찾지 못하고 그만 ‘없음’이라는 허깨비를 보고 만다.



‘호두’란 물질처럼 눈으로 보고 이미지화하고 손의 육감으로 만져 사물화해야 하는데 그 호두란 자리에 그만 ‘소리’와 같은 영역의 추상만 있으니 그만 자결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탈영토적 해체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죽음의 기로다. 그렇지만 그 죽음의 선을 자신도 모르게 넘어버린다. 이미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왜 죽음이 자신에게 들이 닥쳐왔는지.



모두 그 모습을 보고 세상은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 안타까워하는 그들도 같은 영역 안임을 자신들도 모른다. 그들에게 ‘호두’란 물질을 오감의 쾌락을 위해 손에 쥐여 주고 눈에 노출시키며 살게 만든 장본인, 마귀만 그 내막을 알 뿐이다. 그리고 그 ‘소리’의 주체이신 분만 보고 계실 뿐이다.



세례요한이 이사야가 예언한 것을 성령으로 받아 자신이 바로 광야에서 외쳐대는 그 한 사람의 ‘소리’란 것이다. 세례요한도 보통 인간과 동일하게 ‘호두’란 물질에 노출되어 살아 왔지만 그에게 인간이 알 수 없는 다른 영역의 세계가 자신에게 찾아왔기에 그는 그 ‘소리’에 자신을 종속시켜 버린다.



세례요한에게 닥친 현장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별다른 세계다. 죄인이 꿈꿀 수 없는 그 낯선 영역 안에 놓인 자가 그 ‘소리’였기에 그는 ‘소리’의 의미와 그 실상을 만천하에 공개해 줄 분, 곧 하늘로서 온 타자를 반드시 만나야만 자신의 정체성(숨겨진 자아)이 제대로 드러난다. 그것도 자신이 원해서 될 일이 아닌 타자를 보내신 분의 뜻대로 되어 질 일이다. 세례요한은 순전히 당하는 입장에 선다. 그의 출생도 그러하고 그의 자람도 그러하고 그의 성장배경도 그러하고 모두 그 ‘소리’의 역할과 기능 때문에 그에게 낯선 것이었다.



(마3: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세례요한은 자신을 ‘소리’라고 외쳐대는 그 관계의 주체는 ‘주의 길(도)’이다. 세계요한이 받은 그 ‘소리’는 ‘호두’의 육감을 즐기는 인간의 머릿속에 ‘소리’가 아니라 세례요한의 모든 것을 확정짓고 규정하는 모든 것의 ‘소리’다.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들이 유한자(죄인)의 타자로 말미암아 살아온 지난날의 세월속의 유명무실한 쓰레기 타자와 자신의 ‘없음(허깨비)’의 발견이 아니라 영원 안에 이미 계셨던 약속의 타자로서, 그 약속의 타자 안에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해주는 그 ‘소리’였다.



그러니 ‘호두’에 종속된 몸체와 ‘소리’의 실상에 종속된 세례요한과는 엄연한 차이성을 내는 것이다. 차이의 반복 이라기보다는 차이의 영원성을 말하고 싶다(성도가 최후에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본다면). 이미 끝나버린 영원한 종결이다. 약속의 타자가 그 ‘소리’ 되게 하신 뜻과 표식(영적기호)을 세례요한에게 앞당겨서 주면 세례요한은 자신이 고백한 그 ‘소리’로서 역할과 기능은 약속의 타자 앞에서 마감하는 것이다.



(요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그런데 세례요한은 자신 뒤에 오시는 ‘그’를 아직 성령이 ‘그’에게 비둘기형체로 임하기 전에 알지 못한다. ‘호두’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타자로서 오신 그 분이 자신에게 찾아와야만 자신이 왜 그 ‘소리’로서 광야에서 외쳐대는지 알게 된다.



세례요한은 이미 ‘소리’라는 고백을 통해 세상을 부정한 것이다. 육감에 농락당한 인간세계가 의지하고 살았던 ‘호두’란 허상을 ‘소리’라는 추상이 아닌 실상으로 심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 사실을 진리로 증거 해주기 위해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는 분’이 세례요한에게 찾아오신다.



(요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 인줄 알라 하셨기에


(요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매일 바뀌는 선악의 이미지=영화스크린), 손의 피부층(저주받은 흙)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만을 위해서 온 세월을 받쳐 땀 흘려 수고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자신이 ‘소리’라고 외쳐대는 이상한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온 세상은 부정당하고 만다. 모두 문둥병자고 정신병자로 취급해버린다. 진작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사정없이 몰아세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면서 말이다. 오로지 약속의 타자이신 예수님만이 세례요한 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을 죄인으로 규정할 때 비로소 오감(자아생존=자아구원)에 노예로 살아가는 세상은 주님의 십자가의 피, 곧 복음의 영광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그 밝은 십자가 영광에 자신의 눈과 손이 타버리고, 자신을 그렇게 병신 만들게 한 그 ‘소리’의 진정한 주님을 좇아 회개하며 은혜안에 살아간다.



(*들뢰즈와 라캉과 개혁주의신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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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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