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5-7 그리스도의 고난
교회가 올무가 된다는 사실도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통보됩니다. 즉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고난받으셨습니까? 예배당 유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교단이나 교회가 무너져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 즉 ‘말씀 완성’을 위해서 고난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취지는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마귀와의 시험에서 그 내막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그 시험의 자리에 몰아세우신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그렇다면 성령받은 성도도 마찬가지로 마귀에게 시험받는 식으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사람들은 복음으로 인한 고난보다 생계에 지장받지 않을 정도의 여유로움을 복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교회에서 바른 복음만 전한다면 진작에 사람들은 교회 이미지를 달리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자체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쪽으로’ 목회 방침을 설정하므로서 정작 복음은 교회에서 추방당하고 남은 것은 생존투쟁을 위한 고생만 떠안게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이 아니라 ‘자기 생존욕구를 위한 고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 그 안에서 이미 구원은 완료가 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고생’ 지속적으로 미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저 갈데까지 가보자는 식입니다. 생노병사만이 고생이 아니라 진짜 고생은 본인이 마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데서 오는 고생입니다. 본인을 오해하기를 “나는 고생하지 않아야 될 자이다”라고 우기게 됩니다. 남은 고생해도 자신을 고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선입견이 매사에 사단이 가진 힘을 요청하도록 하게 만듭니다. 사단의 제안은 ‘고생을 덜하게 해줄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시한 것은 ‘그리스도 고난에 참여하라’입니다. 교회란 고생을 덜어주는 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알고 찬미가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어떻게 다루시던지 그것이 말씀 완성에 합당한 조치임을 기꺼이 감사함으로 수용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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