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고백

고린도전서 15:9-11 사도의 고백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사도가 생겨났으면, 주님의 일이 사도 임명으로 마감되지는 않고 도로 주님으로 환원될 것이 따로 생겨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고백해야 될 집단, 곧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내놓은 고백을 사도가 앞당겨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유발하게 하신 복음의 내용, 즉 ‘성경대로’ 원칙을 지속적으로 적용하십니다. 성경 말씀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연결지어서 해석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5:22-24 성령의 열매성령의 열매의 특징은 ‘자기 부인’이 되었을 때만 맺어지는 열매라는 점입니다. 사람이 자기 부인이 되지 아니하면 타인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게 됩니다. 그 타인 중에는 당연히 하나님도 포함됩니다.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있다는 말과 열매를 맺는다는 말과 다릅니다. 열매를 맺을 때는,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의 결과는 감추지 못하는 식으로 발현되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신체검사 직전에 기도하고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키 수치가 달라지거나 시력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생리현상을 이성적으로 조절해서 단절시킬 수는 없습니다. 열매란 그 사람의 애씀을 측정하는 것이 아

큰 은사

고린도전서 12:28-31 큰 은사 교회는 주님이 만드십니다. 주님 자신이 머리가 되시면서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규정하시면서 만드십니다. 교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온 세상 전체가 다 동원됩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은 전혀 자생적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죽은 세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전혀 제공할 수 없는 세상이 범죄한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우리 인간들은 알지를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아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는 분도 유일하게 예수님뿐입니다. 신자라는 자들은 바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자를 말합니다. 따라서 현 이 세상이 다 소멸한다

감추어진 것

에베소서 3:7-9 감추어진 것비밀이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비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도 그것이 진리라고 증명할 위인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숨어 있었던 진리’라고 아무나 주장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대해서 옳다, 아니다 를 최종 판단 지울 수 있는 초월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자는 시건방지게 “내가 다 안다”고 나선다면 그 인간을 죽여버려도 비난할 사람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도로 살아났다면?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 사람이 도로 살아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 왜 일반적인 사람들이 실패했는가를

온전한 믿음

히브리서 10:21-25 온전한 믿음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과 ‘작별하지 못합니다’결국에서 심판대에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9-10) 문제는 같은 쪽에 같이 있을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천국 가는 쪽에 있는 자들은 큰 제사장의 피뿌림을 받은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반대편, 곧 지옥편에 있는 자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피는 없고 그동안 자신이

사도의 끝인사

데살로니가후서 3:16-18 사도의 끝인사 베드로후서 3:15-16에 보면,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의 편지를 통해서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 대해서 영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나의 편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

주 안에서의 순종

에베소서 6:1-4 주 안에서 순종 사무엘상 3:13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부모는 자식을 갖게 되므로서 비로소 부모가 됩니다. 자식을 하나님이 주셨기에 부모됨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부모 노릇의 기본은 하나님의 약속과 자신들이 결부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즉 하늘과 땅 사이에 약속이라는 것이 있음을 부모는 자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겁니다. 부모는 그 약속이라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 자식으로부터 도리어 수시로

한 몸과 한 성령

고린도전서 12:12-13 한 몸과 한 성령몸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인간세계에서 참으로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몸을 따로 갖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즉 ‘내 몸은 어디까지나 내 몸이니 부모도 함부로 못한다’가 극히 당연한 성질일 것입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경우가 군말 없이 성립이 되는 것은, 타인의 몸과 내 몸이 따로 떼어져있다는 실정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몸 말고 나머지는 다 타인의 몸이 됩니다. 비록 타인과 내가 하나의 일에 종사하는 동안 비록 ‘우리’라는 집합적 용어를 사용할 수는 있으나 그 사람과 다투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에베소서 2:2-3 공중의 권세 잡은 자악마는 인간 세상 한 켠으로 밀려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의 모든 인간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의 ‘지휘부’가 악마의 처소입니다. 거기서 사람들이 납득이 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것은 이미 인간들의 악마에게 길들여져 있는 하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세상은 공통성을 갖게 됩니다. 복음의 말씀을 거부하는 쪽으로 한곁 같은 의견들을 내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마에게 세상에 대해 전권을 위임해주시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진노하심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악마의 위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오늘 본

사랑하는 자들아

디도서 3:12-15 사랑하는 자들아 두기고는 본디 터키 사람으로(행 20:4) 에베소와 골로새 등지에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한 사람입니다.(엡 6:21/골 4:7) 또한 사도 바울은 디도를 니고볼리로 불러내면서 율법 학자인 세나와 바울의 동역자이자 담대한 전도자인 아볼로(행 18:24-28/고전 1:12,3:4-6)를 그레데 교회로 파견하여 영적인 부족함을 조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레데 교인들은 이들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물자와 의복 등을 도와주므로서 선행과 봉사를 실행하게 했습니다.(행 15:3/롬 15:24/고전 16:6/빌 2:25) 사도 바울이 뭘 만들고자 한 것일까요? 그것은

지혜

에베소서 5:15-17 지혜 지혜란 ‘주님과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유일한 지혜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괄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서 죽고 난 뒤의 사정까지 아울러서 미리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흙덩어리에 불과’함을 전제로 하는 가운데 ‘그런데 왜 그 흙이 그냥 흙이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가’는 점도 겸하여 생각하는 것이 지혜의 내용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흙이 되는 작용’과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작용이 같이 진행 중입니다. 겉과 속을 형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겉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

세상 창조의 뜻

히브리서 4:1-3 세상 창조의 뜻 피조물이 피조물이 된 뜻을 아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피조물은 창조하신 분에 의해 다루어지면서 그제사 그 뜻이 드러납니다.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이것 뿐입니다. 피조물이 생각해야 하는 것도 오직 이것뿐입니다. 왜 피조물이 다같이 피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는 안식에 들어가고, 또 어떤 이는 들어가지 못하는가입니다. 그 이유는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구원될 자와 구원되지 못할 자는 결정적이고 최종적으로 가려기 위해 주어진 겁니다. 이 사항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될 일이 아니라 전체 인류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도를 포함

천사의 권세

고린도전서 11:7-12 천사의 권세 남녀됨은 인간을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실제로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조성해내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구분된 성차이입니다. 권세로 인하여 서열이 발생되는데 이는 권세를 행사하는 쪽과 받은 쪽에 의해서 현실이 구성되어 있다는 이해가 바르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과 천사의 관계가 바로 하나님의 권세의 작용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만 제한해버리면 현재 자신을 성립시키는 권세를 억지로 떼내는 것이 되어서 정신적으로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즉 권세의 지배 아래 있어야 될 존재가 인간인데 권세의 원천을 상실해버리니 그

세상에 임하시다

히브리서 10:5-7 세상에 임하시다인간들 입장에서 가장 큰 위기에 충격적인 사실은 창조주께서 직접 이 인간 사는 세상에 방문하셨다는 점입니다. 왜 굳이 오시는 겁니까? 끝장 내기 위해서입니다. 모조리 다 죽이기 위해서 오셨고 그 중에서도 지옥갈 자와 천국 갈 자를 분류하려 오셨습니다. 죽어가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의지를 결정지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정한다면 굳이 심판주께서 미리 이 세상에서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참으로 이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이런 소리를 외치는 자가 있다면 (=세례 요한) 그자는 목을 쳐서 쟁반에 담긴다 할지라도 마땅한 자입니다. 그리고 돌에

말씀에 집중

디모데전서 6:3-6 말씀에 집중사람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의 관찰과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시편 28:5에 보면,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인이 애쓴 것을 마땅히 본인이 거둘 것이라고 짐작하겠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일으킨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모든 것을 파괴하실 마땅한 권한이 계신 겁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일으킨 사건에 대한 내막과 내역과 본질에 대해서 피조물로서 마땅히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한다는 것은

야곱의 지팡이

히브리서 11:21 야곱의 지팡이이 본문에 해당되는 창세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

내가 갚는다

빌레몬서 1: 15-19 내가 갚는다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인간들의 의도와 상관없습니다. 인간들은 거저 뒷수습에 급급합니다. 그러다보니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선과 악의 판단이 하나님의 선과 악의 판단과 틀리게 됩니다. 사도는 복음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단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 해놓으신 십자가와 부활의 취지로 인해 이 세상은 동일한 패턴(형태)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빌레몬도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맡겨진 주님의 일이 따로 있습니다. 사도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함부로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맡겨진 일은 그 성도 자체

확실한 것으로 시작

히브리서 3:12-14 확실한 것으로 시작 ‘확실한 것’은 따져봐서 수긍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없음’을 들추어내는 기능을 발휘하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믿지 않음’=‘악심’이기 때문입니다. 악하다는 것은 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두루두루 남들의 의견을 경청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어야 될 내용과 직접 만나게 되는 상황 안에서 정해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어야 될 것들을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주입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늘 숙제 같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한 번

외모로 자랑하는 자

고린도후서 5:11-12 외모로 자랑하는 자인간이 이성(理性)은 합리적인 체계를 갖추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우발성과 우연성을 일관성 안에 가두어서 완벽한 구원정보를 갖추려고 합니다. 이 이론에 입각해서 그 다음에 이론에 부합되는 실제적인 조직체로 전환하여 그 구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바로 종교단체, 종교조직체입니다. 그래서 그 종교단체 안에는 각양 ‘가시(可視)적’ 요소들을 가득 차 있습니다. 곧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룩과 경건’을 위하여 각종 구조물과 비품’들을 구비해놓고 있습니다. 당회장에서 걸려 있는 설립자 초상화로부터 시작해서 역대 당회장 목사님들

신앙의 형제

골로새서 1:1-2 신앙의 형제디모데는 지금의 터키 한복판 지역에서 혼혈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헬라인, 어머니는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이 주어졌음을 모르는 아버지와 약속을 아는 어머니 사이에는 디모데는 약속의 완성을 고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던 사도 바울과 만나게 됩니다.“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

The Cross P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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