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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
빌립보서 4:13 능력 ‘능력’이란 모든 세상 일을 다 덮어버리는 힘을 말합니다. 마치 조그마한 벌레 한 개미 한 마리 잡는다고 넓은 이불을 가지고 그 근처 면적 전부를 덮는 것과 같은 겁니다. 혹은 집안에 쥐 한 마리 들어왔다고 집 전체를 불 질러 버리는 기세를 말합니다. 또는 작은 쓰레기가 모아진 것이 보기 흉하다고 하나님께서 그 지방 전체에 폭설이 내려 아예 쓰레기가 보이지 않게 하얗게 지면을 덮는 과도한 작업에 비유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식의 하나님의 일하심이 로마서 5:20에 나옵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여기서 ‘넘쳤다’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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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라
에베소서 5:14 일어나라 인간이 남에게 안 지려는 본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사람은 타인에게 안 지는 양상, 그 자체를 자신을 ‘살아 있는 존재’로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즉 졌다고 느껴지면 죽음 쪽에 가깝고, 이겨서 더 버틸 수 있다고 느껴지면 이게 ‘살아 있다’는 모습이라고 여깁니다. 이처럼 인간은 곱게, 조용스레, 땅을 기어가는 벌레의 고요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지고, 이기고에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자신이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 땅에 무슨 속성을 내뿜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듯이 땅에서 뿜어내는 죽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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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세의 고통
디모데후서 3:1 말세의 고통마지막 때란 언약이 완성하는 때를 말합니다.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세상 전체의 죽음의 때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어쨌든‘태어난 자’들입니다. 문제는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있습니다. 멸망할 세상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면서 두 개의 상반되는 세상이 있음을 알리십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신답니다. 가룟 유다가 태어난 이 세상을 떠나서 말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예외없이 태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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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끼리 인사하기
빌립보서 4:21-23 성도끼리 인사하기안부를 묻고 인사를 하는 것은 이미 공통적인 영역에 함께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운명을 같이하는 그 테두리 안으로 너와 내가 같이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타인을 이용하려 하게 이유는, 자기만의 고유 영역이 따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성령 안에서는 ‘내 것’이라는 것은 일체 인정되지 못합니다. 이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영역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는 구역입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더불어 같은 죽은 자에게만 허락된 구역입니다. 기존의 인간 세계의 영역은 선과 악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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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속에서의 성도
골로새서 4:4-6 시간 속에서의 성도‘시간 안’에서 피조세계는 이미 시간을 접수한 예수님의 기획하신 바 대로 움직입니다. 이 피조세계 안에 있는 성도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간’이란 인간의 마음이 의식이 됩니다. 그러나 그 외부 모습은 그저 ‘끊임없이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게 그 자리에 그냥 있지 않고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성도가 시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변화에 제대로 합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변화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데 그 한 가운데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밀’입니다.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예수님만 아시는 내용이기에 인간이 이 변화의 끝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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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남자에 대한 교훈
디도서 2:1-5 늙은 남자에 대한 교훈 늙은 사람은 사망을 앞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망이 왜 인간들을 기다리고 있는 지를 미리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일행이 낯선 곳에 여행 중에 있다면 앞에 있는 위험을 먼저 감지하는 감각을 가진 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번 교훈은 남자에게 준 겁니다. 남자는 그 당시 가정에서의 예언자 위치에 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이 예언자에 해당되는 가장의 말 한마디, 행동 한마디로 영향을 입게 됩니다. 늙은 남자가 평생 일구어낸 그 세계 안에 가족들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이런 가정이 하나님을 대할 때는 필히 하나님의 말씀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가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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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휼
에베소서 2:4 긍휼 ‘공짜’, 상당히 신나 보이는 개념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공짜에 목숨걸라면 걸겠습니까?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저 주심’ 앞에서도 주저하게 만듭니까? 그것은 기존의 것이 와해되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교체를 요구합니다. 기존의 것에다 더 보태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예측을 실시합니다. 지금 가진 것보다 더 월등한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긍휼이 교체를 요구하게 됩니다. 기존의 것은 ‘없음’이 되어야 합니다. ‘없음’의 자리로 가야합니다. 이 ‘없음’의 자리는 꼭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붕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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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자
갈라디아서 5:4 끊어진 자사람들은 자신들이 인간답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만들었던 그 인간인 줄 압니다. 이것은 변질된 정신상태입니다. 자력으로 자신이 본 모습을 찾아갈 리가 없습니다. 이는 뭔가 ‘끊어짐’을 뜻합니다. 이 ‘끊어짐’을 대체하기 위해서 인간 세계는 무수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부추겨서 본래의 자아를 찾자는 식으로 나갑니다. 자기를 원료로 하고 자기에게서 에너지를 동원해서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겠다는 시도들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끊어짐’을 이해하거나 복구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선 어디서부터 끊어졌느냐를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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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된 일
갈라디아서 4:8-11 헛된 일혼신의 힘을 다해서, 정성을 다하여,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신념으로 섬긴 그 일이 헛된 일이라고 최종 결론지어진다면,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는, 어차피 헛된 목숨이나 헛되게 쓰여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나를 아끼고, 나를 귀하게 모시기 위해서 가진 모든 희생을 다했는데 그 결과가 ‘헛된 일’에 밝혀졌다면 가룟 유다같은 자세를 취하게 되는 바로 그런 결론이 또 하나입니다. 내가 나를 천국보내기 위해 ‘신’에게 목숨까지 이까지 않고 바쳤다면 이는 ‘자기를 위한 도박’이요 ‘투자’입니다. 즉 거래한 것이고 장사한 것입니다. 이런 심보로 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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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내용
고린도전서 15:1-4 복음의 내용 구원 문제가 복음 내용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희망처럼 보이지만 실은 불가능성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내용 자체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정죄하는 것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가장 극단적으로 적대시하는 싫어하는 그 상황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이름으로 다가섭니다.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루어놓은 것을 건드리면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가지고 이것을 건드립니다. 부셔버립니다. 가치를 몰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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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의 가르침
디모데전서 4:1-2 귀신의 가르침 귀신의 가르침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인간이 할 수 없고 주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가르침이다. 달리 말해서 이스라엘과 이방나라의 차이점을 구분 못하는 가르침, 또 달리 말해서, 지옥가는 자들의 기도와 천국에 이미 와 버린 자의 기도가 어떤 차이가 나는지 구분하지 못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려는 자의 기도는 자신의 의로움을 부각하고 내세운 반면에 이미 천국 속으로 쑥 들어와 버린 자의 기도는, 이 말도 안 되는 생명의 선물이 누구의 희생 덕분인가를 말하고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그 어떤 시련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조차 예수님의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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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진리
골로새서 1:3-5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진리비밀로서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진리’와 비밀이 아니라 너도 나도 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진리’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진리는 기존 인간 세계에서 통용되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진리와 만나면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굳건한 나의 세계에 참변을 가져다주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진리라면 사람들은 기겁을 하면서 도망치게 되어 있습니다. 안 듣고자 합니다. 이는 예수님도 동일한 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과 소망은 너무나 터무니없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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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날
빌립보서 2:15-16 그리스도의 날 ‘그리스도의 날’이란 구원이 최종 마무리 지어지는 때입니다. 그 전까지는 ‘인간의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에게 있어 ‘역사(歷史)’란 자신들의 자랑거리를 시대별로 나열한 겁니다. ‘후회스러운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역사를 상기하려는 자들에게는 그 수치스러움마저 영웅적인 용기와 결단력으로 이겨낸 자신들의 대단함을 도리어 찬미하고 싶은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오직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나날을 줄세우듯이 나열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러한 교만과 객기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는 늘 묻혀지고 마는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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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서 난 게 아님
갈라디아서 1:1-3 사람에게 난 게 아님사람에게 나지 아니한 것을 사람들은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사람이 태어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살펴서 거기에 맞추어 자신들도 자연의 일부로서 생존하다가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자신들의 최후를 맞이한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이런 자연의 법칙에 위배해서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난 자가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의심해야 할까요 아니면 자연의 도발로 이해해야 될까요? 예상 못한 일이 일어났다면 이것은 본인들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자연이 반칙을 범한 것이 될까요? 어쨌거나 이 예외적인 상황이 현실의 일부로 들어오는 것을 강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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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사한 유혹
에베소서 4:14 간사한 유혹 유혹은 바깥 세상에서 온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 그것이 이끌리지 않으면 그만일 것입니다. 이미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은 이후에, 인간은 삼킨 것을 내뱉을 재간이 없습니다. 일종의 인간 내부에 질병 같은 것이 작용합니다. 유혹에 대해서 끌리게 되어 있는 질병입니다. 유혹을 인간이 이길 수없는 이유는, 유혹이 아닐 것이라고 여긴 것조차 나중에는 유혹으로 드러난다는 겁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은근히 유혹이 왔으면 하고 고대하고 기다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즉 인간은 매일같이 유혹이 찾아들지 아니하면 살 맛이 안 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매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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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과 믿음의 관계
디모데후서 2:16-19 말씀과 믿음의 관계후메내오라는 사람은 디모데전서 1:19-20에도 나오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사도 바울이 참된 믿는 자를 제시하는데 있어 부정적 역할로 모델로 등장되는 사람입니다. 즉 ‘진리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이런 사람이 됩니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달리 말해서, 성령이 없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면, 진리의 말씀은 멸망의 길로 가는 자를 또렷하게 드러내게 하는 기능까지 발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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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
디모데후서 2:22-26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 누구로부터 사로잡혀 산다는 것은 인간 세계에서 줏대없는 자, 곧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자’로 분류됩니다. 교육의 목표는 자립성을 갖춘 인재가 되는데 있습니다. 어릴 때는 비록 어쩔 수없이 부모에게 사로잡힌 자로 성장하지만 커서는 독립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은 쫓기는 몸이 됩니다. 기존의 힘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하고 더는 누구로부터도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내부의 촉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서게 되면 인간은 그 누구로부터 정신적으로 사로잡히지 않는 한 살 수가 없습니다. 홀로 사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불편해서도 못살고 수입이 없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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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연약함
디도서 3:5-7 성령의 연약함 성령은 참 연약한 것입니다. 마치 사랑이 연약하듯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 강한 것은 권력입니다. 모두들 강한 것을 선호하지요. 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이기는 것에 환호합니다. 이길려면 강한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지요. 인간들은 살아가면서 한시도 강한 것에 대한 믿음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 강한 것에 대한 집착이 십자가 사건을 유발하게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4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옛적부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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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
고린도전서 14:1-2 방언 ‘방언’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알 수 없는 말’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외국말’을 말합니다. 각 민족들의 고유한 말들을 방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각자의 고유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말’ 자체에 강조하면서 그 ‘말’ 자체가 곧 신비한 성령의 능력이라고 우기는 일들이 고린도 교회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즉 어떤 말로 하던 기도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은사가 됩니다. 그런데 외국말로 기도했다는 것으로 더 특별한 은사라도 되는 양 더 신비한 세계에서 들어간 양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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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감동
디모데후서 3:16-17 하나님의 감동 모든 성경은‘선한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책입니다. 그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0:38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과연 예수님께서 어떤 선한 일을 하셨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한 일을 하신 분의 결과가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악한 일을 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예수님과 사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