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편 연구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시편연구

 

 

서론

 다윗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시편은 시대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인종적, 지리저긴 제약까지도 뛰어넘어 모든 기독교회의 공예배에 사용되어 왔으며, 구약의 다른 어떤 책보다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시편의 인기는 그것이 인류의 공통적인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즉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된 150편의 시들은 평범한 개인의 정서와 자기 내부의 느낌, 대적들로부터의 고난과 회복에 대한 간구, 그리고 창조주를 향한 감사와 찬양을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러한 시편 저자들의 경험을 자신들의 삶과 동일시하여 받아들였던 것이다. 본 서론은 이러한 시편의 심오한 사상과 다양한 주제 연구를 목적으로 하되 그 위에 시편의 일반적인 고찰과 다른 성경과의 관계, 그리고 시편만의 독특한 문제에 대한 특별한 고찰을 시행함으로 시편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개괄 이해를 돕고자 한다.

 

 제1부: 시편의 역사적 배경

 

   Ⅰ. 명칭

 

   대부분의 시편이 보여 주는 문학 형식과 동일시되는 단어는 '노래'라는 의미의 와 '멜로디'또는 '성시'를 의미하는 이다. 실제로 는 총 29개의 시편에서 사용되었고 도 총 57개의 시편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는 전치사 와 결합하여 ' …을 연주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어근 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에서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다', '노래하다', '찬양하다'는 등의 의미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개의 단어 중 어느 것도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은 '찬양'을 의미하는 이 사용되었고 좀더 완전한 형태로는 , 즉 '시들의 책'이라는 형태가 사용되었다. 한편 헬라어 역본인 70인역 성경에서는 를 시편의 명칭으로 채택하였는데 이 말은 '활의 시위나 하아프의 현이 울리는 소리'를 뜻하는 의 복수형으로 '현악기에 맞춰 부르는 노래들'을 의미한다. 라틴 불가타역에서는 이러한 70인역(LXX) 성경의 명칭에 영향을 받아 '리베르 살모룸'(Liber Psalms)이라 칭하였으며, 영어 성경 역시 이에 따라 'Psalms'이라 명하였고 한글 개역 성경도 이러한 명칭을 그대로 인용하여 '시편'이라 이름 하였다.

 

   Ⅱ. 저자와 기록 연대 및 편찬 연대    시편의 저자와 기록 연대, 그리고 편찬 연대와 시편의 분류, 주제 설정 등 시편 연구의 전부분에 걸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각 시편의 맨 앞에 나타나는 '표제' 또는 '부제'이다. 왜냐하면 이 '표제'에 의해 본 시의 저자와 기록 연대, 그리고 주제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편의 저자와 기록 연대 및 편찬 연대에 대한 고찰에 앞서 시편에 사용된 '표제'의 용도와 신실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논쟁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1. 표제

 

   '표제'에 대한 연구는 대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제 하에서 실시된다. 첫째는 '표제의 진실성에 대한 논쟁'이며, 둘째는 '표제의 유형에 대한 고찰'이다.

 

   1) 표제의 진실성

 

   '표제'란 시편의 앞부분에 붙어서 시의 저자와 시를 쓰게 된 동기, 시의 유형과 음악의 방향을 제시하는 산문체의 짧은 설명적 문구를 가리키는데, 시편 150편 중에서 34편을 제외한 116편이 이 표제들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 견해에서 이 표제들은 신빙성이 있으며, 온전하고도 완전한 것들로 인정되어 왔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비평학자들은 표제의 가치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고, '궁켈'(Gunkel) 학파는 아예 표제의 중요성을 무시해 버렸다. 그들은 '고라의 자손'을 제외하고는 솔로몬 이후의 어떤 저자도 표제에 언급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로 보아 표제어는 '후대의 랍비들이 되는 대로 시편에 삽입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견해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표제는 그 시편의 내용과 모순된다'는 사실과 '다윗의 저자로 기록된 표제어의 시에서 솔로몬 시대의 성전이 전제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표제어의 진실성은 확실히 인정되고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시편의 표제어와 시의 내용이 서로 모순된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러한 사실에 대한 정확한 근거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시편들도 표면적 측면만을 본 것일 뿐 그 저변에 흐르는 근본 의미가 표제어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주장에 불과하다. 둘째로 표제는 다윗의 저작임을 밝히면서 그 내용에는 솔로몬 성전이 건축된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시 27:4에서 '여호와의 집'이 솔로몬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때의 장막'을 가리키며, 또한 시 27:4의 '전'이라는 의미도 '다윗 때의 장막'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 절은 다윗 이전 시대인 여호수아 시대에도 '성막'을 '여호와의 집'이라 부른 것에서 잘 알 수 있다(참조, 수 6:24; 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제1부, Ⅱ. 2. 1)의 '다윗의 저작권 부인에 대한 논쟁' 부분 참조). 그러므로 다윗의 시에 나오는 '전' 또는 '여호와의 집'은 다윗 당시에 법궤가 모셔져 있던 '성막'을 의미하며, 따라서 표제어와 내용 역시 모순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표제어를 후대의 랍비들이 삽입한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 역시 70인역의 '오역'으로 인해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임이 밝혀졌다.

 

   즉 표제어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기록된 오랜 것이라는 사실이 고대 어휘의 어려움 때문에 몇 군데를 잘못 번역한 70인역의 오역으로 인해 증명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시 75, 76, 77편 등의 표제로 사용된 를 70인역은 '목표를 위해'라는 로 번역했는데 오늘날의 구약학자들은 이 말을 '찬양대를 위하여'라는 의미라 정의하며, 시편 80편의 표제인 역시 70인역에서는 '변화를 경험한 자들을 위해'라는 으로 번역했으나, 현대의 구약학자들은 '찬양대를 위하여'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어 시편이 소유하고 있는 표제어의 전문적인 용어의 뜻이 시편의 저작 당시와 비교해 볼 때 70인역자의 때에는 이미 잊혀질 정도로 변질되었음을 말하는데 이는 시편의 표제와 70인역 번역의 때와는 큰 시간적 격차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의 표제는 그 진실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따라서 표제에 의해 증거되는 저자와 기록 연대, 내용과 주제 역시 진실한 역사적 증거로 인정되어야 한다.

 

   2) 표제의 유형

 

   시편에 나타나는 표제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다섯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시편의 시적 표현을 드러내는 것들로서 '시르', '미스포므', '믹담', '식가욘' 등이 이에 속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제2부, Ⅱ. 참조.

 

   둘째, 악기나 시편의 연주법과 관련된 표제들로서 '악장', '느깃놋', '느히롯', '알라못', '스미닛', '깃딧' 등이 이에 속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제2부, Ⅲ. 참조).

 

   셋째, 시편의 예배 의식에 따른 표제들로서 주로 예배에 사용된 시편들을 가리키며, '성전 낙성가'(시 30편), '안식일의 찬송시'(92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 120-134편) 등이 이에 속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제2부, Ⅲ. 2. 참조).

 

   넷째, 저자나 봉헌에 관계된 표제들로서 다윗과 솔로몬, 아삽과 고라 자손들의 시임을 증거하는 표제들이 이에 속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제1부, Ⅱ. 2. 참조).

 

   다섯째, 시가 저작될 때의 상황을 설명하는 표제들로서 주로 다윗의 시에서 발견된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의 상황을 설명하는 표제들로서 주로 다윗의 시에서 발견된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노래'(시 3편), '베냐민 사람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다윗이 여호와께 한 노래'(시 7편),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시 18편),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하다가 쫓겨나서 떠날 때에 지은 노래'(시 34편) 등이 이에 속한다.

 

  2. 저자

 

   시편의 저자에 관한 고찰은 크게 '다윗과 관련된 시'에 대한 고찰과 '아삽과 고라 자손의 시'에 대한 고찰, 그리고 '무명의 시'에 대한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세 가지 중에서 '다윗에 관한 시'가 우리의 주된 관심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본 서론에서는 많은 양의 지면을 '다윗에 관한 시'에 대한 논쟁 부분에 할애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본서의 기록 연대와 편찬 연대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삼을 것이고 그 후 '무영의 시'와 '아삽과 고라 자손의 시'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 볼 것이다.

 

   1) '다윗의 시'

 

   (1) 저작권에 대한 표제의 증거

 

   시편의 표제는 총 73편의 시를 다윗의 저작으로 돌린다. 히브리 성경 시편의 서두에 있는 표제에 의하면 73편의 시가 '다윗의 시'로 되어 있으며, 12개가 '아삽의 시'로, 그리고 10편은 '고라 자손의 시'로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 72편과 127편은 '솔로몬의 시'로 규정짓고 있으며, 에스라인 '헤만'(시 88편), '에단'(시 89편)에게 각각 한 편씩,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시 90편)의 저작으로 한 편을 규정지은 후 나머지 50편을 '무명의 시'로 규정지었다. 그러므로 표제의 진실성을 믿는 전통적 견해는 이러한 표제의 증거에 따라 73개의 확실한 다윗의 저작인 시편을 제외하고도 무명의 시 중 다윗의 시로 추측되는 몇 편의 시가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서론 1부 2. 저자 부분의 2) '무명의 시'를 참조하라).

 

   (2) 다윗의 저작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들

 

   ㄱ. 모든 시편이 다윗 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

 

   이 견해는 주로 유대 랍비들과 탈무드에 의해 주창되는 견해인데 그 견해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다윗이 첫 사람 아담과 멜기세덱, 아브라함과 모세와 헤만과 여두둔, 그리고 아삽과 고라의 세 아들들의 열 장로들의 도움으로 시편을 기록했다'(Baba Bathra 14하). 물론 이 구절이 장로들의 도움을 입은 다윗이 시편 전체를 저술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 말은 오히려 다윗이 이미 저술된 장로들의 시를 수집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시편의 표제에 나타나지 않은 아담과 멜기세덱, 그리고 아브라함을 시의 저자로 삽입시키고 성경이 증거하는 솔로몬과 에스라인 에단을 시의 저자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시 89편의 에단을 아브라함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며 솔로몬에 의해 작성된 시편은 솔로몬을 위하여(for) 작성된 것이지 솔로몬에 의해서(by)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다윗의 시인 시 139편을 '아담'의 시로, 시 110편을 멜기세덱이 지은 시로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의 성경 신학자들 중 이러한 견해를 인정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탈무드의 견해가 비록 모든 시편에 대한 다윗의 저작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모든 시편이 다윗에 의해 수집 됐다는, 즉 '다윗 이후에는 단 한 편의 시도 저술되지 않고 모든 시편이 다윗과 열 장로들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제의 진실성과 성경의 내용을 고찰해 볼 때 아담과 멜기세덱, 그리고 아브라함이 시의 저자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으며, 또한 성경은 다윗 이후에 지어진 시가 있음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그들의 주장은 지나친 다윗의 우월성을 증거하기 위한 유대주의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ㄴ. 다윗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견해

 

   이 견해의 주된 논쟁점은 성경이 증거하는 '다윗의 시'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시편은 히브리 종교 단체의 필요성에 의해 생겨나고 성장한 것이라 한다. 그들이 다윗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윗의 저작권을 반대하는 그들의 첫 번째 주장은 다윗의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직접적으로 왕이라 칭하거나 3인칭으로 다윗을 칭했다는 점(참조, 시 20, 21, 61, 63, 72, 110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 먼저 그들이 말하는 시편 중 72편은 '솔로몬의 시'이므로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솔로몬이 자신의 부왕을 가리켜 '왕'이라 표현하며, 자신을 가리켜 '왕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나'라는 1인칭 대명사보다도 '왕'이라는 공적 명칭이나 자신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공적 자격을 나타내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데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신약이 시 110편을 다윗에게 귀속시키고 있는 것은(참조, 행 2:34) 이러한 표현이 다윗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데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함을 드러내는 분명한 증거이다.

 

   둘째, 다윗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자들의 두 번째 주장은 다윗의 저작으로 알려진 것들 중에 솔로몬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성된 성전에 관한 언급이 있다는 점이다(참조, 시 5, 27, 28, 63, 69, 101, 138). 그러나 이러한 견해 역시 성경에 대한 고찰을 간과한 견해에 불과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 하였듯이(제1부, Ⅱ. 1. 1) 참조), 이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법궤를 모셔 두었던 다윗 시대의 '장막'이 '거룩한 곳'(참조, 출 28:43; 29:30), '여호와의 집'(참조, 수 6:24; 삼상 1:7) '하나님의 집'(참조, 삿 18:31), 그리고 '성전'(삼상 1:9; 3:3)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성경의 증거로 쉽게 반증될 수 있다. 즉 다윗의 시편에 나오는 '여호와의 집', 또는 '전', '성전'이라는 단어는 솔로몬 시대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윗 시대의 '장막'을 가리키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다윗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자들의 세 번째 근거는 다윗의 저작이라 생각하는 시에 아람풍의 시편이 있다는 점이다(참조, 시 139편).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윗의 대적들 중 많은 대적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즉 그가 물리쳤었던 블레셋과 모압, 암몬, 아말렉, 에돔 등(참조, 삼하 8:12-14) 이 아람어 계통이었고, 따라서 다윗의 시에서 어느 정도의 아람풍이 드러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저작권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고, 따라서 표제가 증거한 '다윗의 시'에 대한 다윗의 저작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임을 믿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다윗의 저작을 증거하는 직접적인 증거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ㄷ. 다윗의 저작에 관한 증거

 

   다윗의 저작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증거는 표제에 나타나는 , 즉 '다윗의 시'라는 문구이다. 비록 이 문구에 사용된 전치사 이 때때로 '소유를 가리킬 때'(참조, 사 24:1)와 '봉헌이나 지정을 가리킬 때'(참조, 시 4편)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보통은 '~의'라는 의미로 쓰여 그 저작물의 저작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에서 다윗의 저작권은 더욱 강하게 주장된다. 이러한 사실은 합 3:1에 기록된 '하박국의 기도'라는 의미의 가 분명히 하박국 선지자를 하박국서 저자로 증거하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또한 '다윗의 시'라고 붙여진 표제의 시에서 그 스스로 다윗을 저작자로 증거하고 있는 점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명확하게 증거되고 있으며, 신약성경 역시 그러한 다윗의 저작을 다윗에게 귀속시키고 있는 점에서 더욱 분명히 증거된다(참조, 마 22:44; 막 12:36; 눅 20:42; 행 1:16; 2:25, 34; 롬 4:6; 11:9). 그러므로 시편이 증거하고 있는 다윗의 저작은 인정되어야 하고 명확하게 주장되어야 한다.

 

   이제 이 외에 시편의 다윗 저작설에 대한 증거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윗 자신이 매우 원숙한 음악가였다는 점이다. 그는 사울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여 악신을 쫓아낸 명연주가였고, 이러한 음악 솜씨를 아모스 선지자는 그의 선지서에서 분명하게 선언하였었다(참조, 암 6:5). 그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찬양대를 조직하고 전문적으로 찬양만 하게 하였으며(참조, 대상 25:1-31), 성전 공예배를 위해 곡을 작곡하게 하는 등 음악에 깊은 관심과 조예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이렇듯 다윗은 훌륭한 음악가였고 시편을 작성하는 데 필요한 음악 지식을 지닌 자였다.

 

   둘째, 그는 진실로 훌륭한 시인이었다. 그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애가'(참조, 삼하 1:19-27)는 이러한 그의 훌륭한 시성을 잘 드러낸다.

 

   셋째,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참조, 삼상 16:13). 다윗이 이렇듯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는 성경의 증언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만이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은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실로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요 그를 통하여 '여호와의 신이 말씀하신 자'요 '그 말씀이 다윗의 혀에 있은'(참조, 삼하 23:1, 2) 성령의 사람이었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시편을 기록한 시편의 저자였던 것이다.

 

   넷째, 시편에 나타난 예배용 노래의 기원이나 저작, 그리고 편집에 관한 사항들이 다윗의 이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증거하는 말씀들이 구약의 각처에서 발견된다(참조, 삼하 6:5-15; 대상 16:4; 대하 7:6; 29:30).

 

   다섯째, 다윗은 참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고 순수한 종교적 감성을 소유한 자였다. 시편은 주를 사랑하며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는 기록될 수 없는 영혼의 기도들이기도 하다. 다윗은 비록 한때 하나님께 범죄하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종교적 열정을 잃어버리지 아니한 위대한 신앙인 이었다.

 

   여섯째, 다윗은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지닌 자였다. 다윗은 소년 목동으로 시작해 용사, 백성의 지도자, 왕, 감독자, 음악가, 시인, 종교인, 인자한 아버지, 그리고 죄인의 모든 경험을 지닌 자'였다. 시편들의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지닌 자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러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본 자만이 시편에 나타나는 다양한 상황들의 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시편 자체에 다윗의 저작권을 증거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시 23편은 소년 목동의 경험을 실감나게 보여 주며, 시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함께 범한 죄를 회개하는 처절한 기도가 기록되어 있고, 시 57편에는 사울의 암살을 알고 광야로 도망하는 다윗이 미래의 왕국을 위해 기도하는 간구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시편의 다윗 저작을 주장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여덟째, 마지막으로 시편의 다윗 저작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신약이 다윗의 저작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 2편은 행 4:25, 26이, 시 16편은 행 2:26-28에, 시 32편은 롬 4:6-8에, 시 69편은 행 1:20에 그리고 시 110편은 마 22:44; 막 12:36; 12:36, 37; 눅 20:42-44; 행 2:34에 각각 인용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제가 증거하는 '다윗의 시'를 다윗의 저작으로 확실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2) '무명의 시'

 

   '무명의 시'는 말 그대로 그 시의 저자나 기록 연대를 전혀 알 수 없는 '익명의 저자에 의한 시'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시편에 나타나는 50편의 시 중에서 몇몇의 시를 다윗의 저작으로 귀속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시 10, 33, 66, 67, 71편 등 다윗의 시편 군에 속하는 시들이다. 그들이 이러한 시들을 다윗의 저작으로 포함시키는 주된 이유는 그 시들의 내용이 다윗의 저작임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과 다윗의 시편 군에 포함된 시 2편이 표제에 다윗의 시라는 규정이 없다 할지라도 신약성경이 그것을 다윗의 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신빙성 있는 주장으로 보이며, 따라서 '무명의 시'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위의 5편은 다윗의 것으로 나머지 45편은 저자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저자에 의한 시라고 보는 것이다. 

 

   3) 아삽과 고라 자손의 시

 

   히브리어 성경의 표제는 12편을 '아삽'에게 돌린다. 그러나 이 모든 시들을 레위인 바레야의 아들이요 다윗이 뽑은 음악가였던 아삽에게 돌리기는 무리인 듯하다. 왜냐하면, 시 73편은 여호사밧 시대에 속하며, 75편과 76편은 히스기야 시대에 속하고, 시 74편과 79편은 갈대아 포로의 시작 때에 속하기 때문이다(Havernick). 그러므로 '아삽'이란 개인의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삽이라는 가문의 이름'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견해는 충분히 인정할 만한 추측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아삽의 가문이 여호사밧의 때에 있었고(참조, 대하 20:14), 느헤미야와 함께 페르시아로부터 귀환한 포로들 중에는 245명의 음악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히브리어 성경의 표제에 의하면 '고라 자손들의 시'는 모두 10편인데 혹자는 이 시들이 고라 자손에 의해 쓰여진 시가 아니라 '고라 자손들이 보관해 온 시'라고 해석하였지만 이러한 해석보다는 표제의 증거 그대로 고라 자손에 의해 저술된 시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3. 기록 연대

 

   시편의 대다수는 통일 왕국 시대(B.C. 1043-930)에 기록된 것들이다. 그러나 모세에 의해 쓰여진 시와 포로 귀환자들이 기록한 시까지 합쳐서 생각하면 그 연대는 근 1000년에 가까운 엄청난 세월의 기간으로 설정된다. 한편 과거의 비평주의자들은 시편의 기록 연대를 통일 왕국시대나 바벨론 포로 때보다도 훨씬 뒤인 마카비 시대로 보았다. 그러나 주장은 북팔레스틴 시리아 해변의 '라스 삼라'(Ras Shamra)에서 발견된 '우가릿 사본'(Ugaritic texts)에 의해 오늘날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학설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우가릿 사본'에 기록된 시문이 대부분 B.C. 14세기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어 시편의 고대성이 입증되었으며, 그 문체나 글자 역시 70인역이 오역할 정도의 고대 문자로 기록된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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