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계 들
2009-06-04 08:31:52 이름 : 이근호
뭔가 분명히 움직이기는 움직이는데 그냥 혼자 움직일 때, 우리는 ‘기계’라고 부른다. 등산하는 자는 ‘등산하는 기계’,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기계’, 시를 짓는 자는 ‘시인이라는 기계’, 트럼펫을 부는 자는 ‘트럼펫 부는 기계’, 학교 행정을 담당하는 자는 ‘교장 선생님이라는 기계’, 설교하는 자는 ‘목사’라는 기계, KTX을 운행하는 자는 ‘기계를 만지는 기계’가 되고, 아기 낳는 산모는 ‘엄마’라는 기계의 생활을 새로 시작한다.
하루 종일 스케줄 따라서 부지런히 움직이기는 움직이는데 왜 설치는지 모르고 그냥 움직일 때, 우리는 ‘기계’라고 부를 수 있다. 기계는 아무 것도 볼 줄 모른다. 안 보이기에 못 보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자기와 같이 의미 없이 움직이는 기계들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기에 자신도 저 기계들처럼 꾸역꾸역 살기만 하면 되는 줄로 안다.
다른 기계들이 놀러 갈 때, 같이 놀러 가면 되는 줄 안다. 남들이 골프 치는 기계가 되면 나도 같이 골프 치면 되는 줄로 안다. 기계가 보는 것은 기계뿐이다. 기계의 안목에는 기계 이상을 보지 못한다. 영(靈)을 보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한다. 뭐든지 기계로 환원할 뿐이다.
들뢰즈라는 철학자는, 인간을, 스스로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로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본 것이다. 인간은 아무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다. 인간이라는 기계가 움직이는 것은 기계가 보지 못하는 영의 세계에서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또한 사회를 ‘개인을 억압하는 더 큰 기계 덩어리’로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잘못 본 것이다. 인간이라는 기계는 그 누구에게도 억압당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도 홀로 기계로서 존재한다. 단지 다른 기계와 충돌하고 또 충돌하면서 수시로 망가지고, 부서져갈 뿐이고 결국 산산조각 날 뿐이다. 하나의 기계 쪼가리로서 운명은 끝난다.
평생을 보내면서 늘 중얼거린다. “기계 이상의 것은 안 보이니 알지 못하노라”고!
인간은 자립을 선언할 때부터 기계가 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과실을 따먹고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했다. 악마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과 인간을 떼어 놓으면 인간은 단지 기계 쪼가리가 될 뿐인 것을!
기계는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기계가 기계를 움직일 능력도 없고 구원시킬 아이디어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악마가 심어준 그 욕망을 밖으로 늘 배출할 뿐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기계는 다른 기계들과 죽이 맞는 것이다. 납득이 되고 타인의 움직임에 합세하고 동조한다. 무당을 세우나 선지자를 세우나 목사를 세워도 그들과 같은 기계 덩어리를 옹립한다. 죽이 맞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기계 생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 기계에 성령이 임한다면? 자신이 왜 기계에 불과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할 관계를 가진 기계는 왜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자격으로 자신을 토기로 만들었는지도 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 64:8)
그것은 진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이로서 창조의 원리에 합당한 인간이 제대로 출발하게 된다.
즉 예수님만이 제대로 된 아들이었던 것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 17:5) 예수님의 피만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피이지, 인간이라는 기계의 피는 피가 아니라 기계와 기계 사이를 흐르고 있는 ‘기계적 열기’에 불과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악령의 작용도 만만치 않다. ‘다른 사람은 다 기계라도 나만은 기계가 아니라’고 우긴다. 남들과의 만남과 충돌을 기계와 기계의 충돌로 보지 않고 기계와 사람의 충돌로 보아서 피해보상을 기계에게 요구한다. “나는 인간이고 너는 기계니 나는 손해 보면 안 되고 너는 손해 봐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이처럼 매사가 자기중심이다. 그런데 모든 기계가 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제발 나만이, 나만이 인간이 되어야 하기에 너희들은 제발 나를 봉사하는 충실히 기계로 남아다오”
기계이면서 기계로 살지 못하고 악령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저리에 선악지식이 차지해서 악령의 조정을 받으면서 홀로 신이 되려 한다. 기계가 신이 되려는 것, 100% 악령 기계다.
성령을 받는 자도 기계다. 성령께서는 병기(兵器)로 사용하신다. 복음으로 전신갑주를 걸친 영적 병기다.(엡 6:13) 이 병기는 자기중심이 아니다. 예수님 중심이다. “나는 예수님이 다루시는 기계 맞습니다”라는 고백은 다음과 같은 말씀의 힘에 의한 고백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이 성령 받은 기계는 오로지 예수님만을 증거 하기 위한 기계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하나님은 기계들을 만드셨다. 애초부터 아드님은 오직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아들 중심의 나라, 그곳이 천국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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