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글, 그리고 그 뒷 이야기

솔직한 글, 그리고 그 뒷 이야기

솔직한 글, 그리고 그 뒷 이야기


 


아래의 글 역시 그 어장검씨의 글입니다.


 


{ 제게는 친형님이 몇분 계시는데 그중 한분이 오래전 급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평소 건강에 아무 이상없었는데 느닷없이 죽음을 통보하신것이지요.


그때의 슬픔이란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었습니다.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듯 싶군요.


 



 


기억하기로는 그날이 초겨울 어느 쌀쌀한 토요일 저녁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는데 형님의 부음소식을 듣고는 부리나케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더랬습니다.


그리고 형의 영정을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하였지요.


 



 


차디찬 냉동고에 안치된 형님의 얼굴은 창백하여 무표정했습니다.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었고 눈은 마치 무언가 깊은 꿈을 꾸는듯 무겁게 감겨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앉으며 너 여기 웬일이냐 말하고는 반갑게 동생을 맞이할것만 같은데 딱딱하게 누운채 조그마한 미동도 하지 않는 형을 보며 저는 일어나라 온갖 몸부림 쳐야만 했지요.


 



 


어느정도 마음을 가다듬은 저는 상주가 되어 오고가는 조문객들을 맞이했습니다. 다들 슬픈 얼굴로 형님의 영정앞에 꽃을 올리고는 잠시 묵념하고 돌아서셨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손을 꽉 잡아주시며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이제 밤낮으로 영정을 지키는것도 고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았고 다소 의례적인 조문객들의 방문에 지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어떤 분은 오시자마자 흐느끼며 괴로와하셨고 어떤 분은 터져나올것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제게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형님을 곧잘 따르던 교회 청년들도 와서는 조의를 표하는데 장례식장에 처음 와보는 어린친구들은 슬픔보다는 호기심가득한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고단한 하루를 다시 마무리할무렵 어떤 키 큰 남자가 휘청휘청거리며 들어오기 시작했지요.그리고는 영정앞에 털썩 주저앉아 형의 이름을 애절히 부르며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형님과 친구처럼 지냈던 외삼촌이셨습니다. 나이차이가 많지 않아 어렸을때부터 곧잘 함께 어울리곤 하셨었지요.


 


 


삼촌의 얼굴은 슬픔보다는 오히려 놀램과 충격으로 가득해 보였는데 어찌나 서럽게 소리내어 우는지 영정옆에 서있던 저도 그만 메말랐던 눈물이 다시 터져나와 버렸습니다.


 



 


'흐흐흑'


 



 


그러자 상주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한다며 옆에 있던 다른 형님이 제게 눈짓으로 표시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입술을 꽉 깨물었는데 도저히 흐르는 울음을 막을수는 없었습니다.


삼촌의 슬퍼하는 모습이 진정으로 느껴져서 제 마음이 크게 동하였던 것입니다.


 



 


밤이 이슥하여 사람들도 물러가고 한가해진 저는 장례식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세상에..장례장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이곳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요.


벽 하나사이로 죽은 시신들이 각각 자기 공간을 지키고 있고 주위는 적막하기 이를데 없는데 캄캄한 공중으로는 금방이라도 죽은 영혼들이 튀어나와 배회할것만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이 싫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시는 살아날 수 없게 되었지만 왠지 형의 시신옆에 있는것만이라도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삼일동안 천명에 가까운 조문객들을 일일히 답례한 후 형은 결국 벽제 화장터에서 불로 깨끗이 소멸되었고 남은 유골을 예비한 납골당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예식이 끝난후 집으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그때 세상이 너무 낯설기도 하고 야속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이렇게 세상이 둘로 쪼개진것같은데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반복되는 일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정말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몇년이 금새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형의 죽음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할만큼 강건해졌고 어느 화창한 오후에 습관대로 성경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그 때 읽었던 대목이 마리아가 주의 무덤을 찾아가는 일화였습니다. 요한복음 20장이지요.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 (요20:11-13)


 



 


이 구절을 읽는동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그저 그렇게 스쳐지나갔던 구절들이 형의 장례를 치루고 난후에는 전혀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장지에 가서 처량히 우는 모습이 그 옛적 저의 형님이 돌아가셨을때 서럽게 우셨던 외삼촌을 연상케 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속을 들여다보니.....'


 



 


하나님을 섬기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의 아들 예수께서 오시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들을 모질게 핍박할뿐만 아니라 심하게 때리고는 마침내 사형을 선고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확신하였지요.


성경을 잘안다 하는 그들은 마침내 주를 발가벗긴후 나무위에서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고도 엄하게 선포하여 누구든지 이 사람을 말하고 따르는 자는 교회에서 출교할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할것이라 외쳤습니다.


 


 


유대인에게 출교란 곧 세상과의 격리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어린나귀를 타신 예수께 호산나 크게 외치며 종려가지를 반갑게 흔들던 수만의 사람들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것조차 조심스러워했지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힐때만 해도 그들은 설마설마하며 마지막 반전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며 앉은뱅이를 고치고 눈먼자를 뜨게한 역사가 있으니


혹시라도 그가 또 다시 놀라운 능력으로 주위에 있던 키 큰 로마군인들을 단숨에 제압하고는 '내가 내 나라를 이곳에 세우노라' 크게 포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계속해서 나무위에 달린 사람은 점점 얼굴이 창백해져가며 거친숨을 몰아쉬기만 하니 사람들이 조금씩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참다 못한 어떤 지나가던 자들이 마침내 예수께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순식간에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그리스도를 바라 보았을것입니다. 그러나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자기를 구원하기는 커녕 호흡조차 매우 힘겨워했고 눈빛도 점점 촛점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엇이 그리 애통하고 슬펐는지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천천히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떨구기 시작했습니다.


 



 


로마병사가 곧 밧줄을 풀어 나무아래로 내리자 그 사람의 몸이 축 늘어졌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옆구리에 창을 깊숙히 찌르니 그곳에서 피와 물이 분수처럼 솟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라 소문났던 사내가 완전히 죽은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한번 혀를 끌끌 차며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난 듯한 이 비극적인 결말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곤 무거운 침묵으로 각각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겠지요.


 



 


교회는 그의 시신까지도 자신들이 관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단 무리들이 훔쳐가서는 이상한 소문을 낼까 염려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나마 예수의 장지에 가서 그를 기리고자 했던 사람들도 계획을 포기하고는 응당 집에서 몸을 사려야만 했습니다. 혹시나 교회 관원들에게 그 모습을 들키면 출교를 당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는 불상사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죽어버린 한 사내를 조의하는 것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굳건히 지키고 싶었을것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계속 울기만 하는데 주위사람들의 경고에 개의치 않고 기어코 주께서 묻혀있는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


 



 


시신만이라도 볼수 있기를 소망했건만 그녀는 찾아간 무덤에서 주의 시체를 볼수없게 되자 어찌할바를 모르고 무덤옆에 서서 애들처럼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몸을 구부려 안을 들여다보고는 재차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더욱 흐느꼈던 것이지요.


 



 


눈물이 앞을 가려 세상이 온통 뿌옇게 비췰즈음 한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점점 눈앞에 다가오는것을 느꼈습니다.


시신을 관리하는 동산지기인줄로만 알고 여인은 울먹이며 아무나 붙잡고 사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시신의 행방을 알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마침내 그 사람이 나직한 목소리로 여인에게 말을 건네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6절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 '


 



 


가뜩이나 눈물을 펑펑 흘리는 마리아의 슬픔의 깊이가 내 마음에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 계속해서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는데 마침내 이 대목에서 저는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지못해 밖으로 나가 소리내어 한참을 엉엉 울어야만 했습니다.


 



 


마리아를 향한 주의 음성이 어떠했을까요.... 자신을 휘호하며 죽음도 불사하겠다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 가녀린 여인만 음습한 무덤가에 홀로 서있단 말입니까..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채 목놓아 울고 있는 이 여인을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어떠한 심령으로 바라보셨을까요.


이틀전의 끔찍한 고통은 아직도 생생한데 자신을 그리워하여 찾아오는 사람은 발견할 수 없고 오직 단 한사람만 자기 눈앞에 서있으니 이 적막한 무덤가에서 그녀를 부둥켜 안고 함께 펑펑 울고싶지 않으셨을까요.


 



 


그래서 마리아가 한참동안이나 자신을 찾음에도 선뜻 대답지 아니하시고 마냥 지켜보시기만 하셨으니 주께서도 목이메어 쉽사리 그녀를 부르기가 어려웠었나 봅니다. 그 밤, 그 새벽에도 이스라엘 온 동네 여기저기에서는 죽은 이를 조문하러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이 없었을테니까요..


 



 


저는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하여 두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악인의 장지라도 찾는이가 수십이요,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세상의 범인(凡人)이라도 며칠밤을 새우며 그 영혼을 기리는 자가 수백일것인데,


우리 주님께는 그 묘를 찾는이도 없게하여 쓸쓸한 적막만 감돌게 해드렸군요. 그래서 주가 다시 살아나셨을 그때에도 밤새소리와 벌레소리만 주위에 가득하게 했을뿐 동행하는 사람도, 슬퍼하는 소리나 기념하는 곡소리도 없게 만들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너무 죄송스럽고 안타까워서, 그리고 감히 표현하지만 우리 예수께서 너무 불쌍하셔서 저는 한참을 마리아와 같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리곤 새삼스럽게 마리아에 대한 깊은 고마움이 우러나오더군요. 그나마 마리아가 있어서 우리 주의 장지가 그렇게 쓸쓸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진실로 울어주던 외삼촌때문에 형의 죽음에 대한 저의 감정이 이완된것과 같을 것입니다.


 


눈물을 닦으며 성경을 덮은 저는 속으로 마리아의 이름을 되뇌이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 사랑을 받은 마리아여.. 고맙소..고맙고도 고맙소.. 당신의 그 고운 심성마저 없었더라면 우리가 훗날 어떻게 주를 만날수가 있겠소..


만일 당신마저 주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참담한 심령에 도저히 얼굴을 들수가 없었을것이오. 마리아여. 우리를 대신하여 울어줬으니 고맙고도 고맙소. 참으로 고맙고 고맙소...'


 



 


여러분도 혹시 마리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새롭지 않습니까..


 


 


혹 우리가 그 시대에 있었더라도 어쩌면 우리도 두려워하여 주를 찾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훗날 회심하여 주를 위해 장렬히 순교한다 할지라도 이 민망한 마음은 평생을 갔었겠지요.


그나마 마리아가 그곳에 있어 주를 위로해 드렸으니 우리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겠군요.


 


그러니 마리아에게..우리가.. 큰 빚을 진셈이 되겠지요?


 



 


아 ! 그러고보니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은 원래 다 마음씨가 예쁜가 봅니다. 막달라 마리아말고 베다니의 마리아가 있었지요. 이 분은 그 비싼 향수를 주의 발에 부어서 온 방에 꽃향기가 가득하게 했던 사람입니다. 더구나 지극히 비싼 향수이기때문에 이를 담은 옥합이 아주 조금씩만 흐르게 구멍이 나있자 성에 안찬 마리아는 마침내 과감히 통을 바닥에 던져 깨뜨리고 말지요.


 



 


깨진 병사이로 향유가 콸콸 흐르게 되니 그제서야 만족하고는 다시 평온한 얼굴로 자기 눈물과 함께 주의 머리와 발을 적셔드렸답니다. 과감하고 당돌한 마리아의 행동을 보고는 제자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중 어떤 사람은 한 두방울만 흘려도 될것을 왜 전체를 다 깨뜨리어 남김없이 버리느냐 투덜투덜 댔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군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모든 여인이 이처럼 예쁘고 진실된 사랑을 가지게 된다면 저는 주저없이 딸의 이름을 마리아라 짓겠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는 외국이름이군요.


 



 


그래서 너무 튀지 않게 마리라고 짓는건 어떨까요. 한국이름같기도 하고 외국이름같기도 하니 자라면서 놀림받을일도 없겠지요. 그런데 안타까운건 제게는 딸이 없습니다.


이런 좋은 이름을 쓰지못한다 하니 너무 억울하군요. 그나마 다행인건 제 성이 '한'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후후..... }


 


제가 창작한 그 뒷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자기 사람들을 만나시고 위로하시고 난 뒤에, 예수님은 예수님 길로 가시고 사람들은 사람들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상황 종료, 다시 전설의 인물로! ]


 


예수님에 대한 애틋한 동정심에서 흘러 내리는 남자의 뜨거운 눈물이 기어이 천국에 못 들게 하는 군요. 눈물을 흘리지 말고 차라리 “화로다 망할 자가 나다!”라고 외치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의 한계가 여기 있음을 어장검씨의 글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한낱 관찰의 대상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육의 결정적 한계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타인, 영원한 기억 속의 인물.



이런 예수상을 갖고 아무리 예수님에게 애정도 동정을 표해도 그 예수는 여전히 나 밖의 예수로 머물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용어 ‘예수 안’이 전혀 현실화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인간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은 “어린이 여러분, 옛날 옛날에∼ 예수라는 분이 살았거든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동화 이야기 정도입니다. 이런 동화 이야기, 전설 이야기를 진담으로 여기고 목숨 바치는 자는 얼마나 이상한 인간으로 취급받겠습니까. “교회도 아니야, 기독교도 아니야 신학은 더더구나 아니야, 나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족해!” 사람이 이 정도로 변하면 이 사람을 정신병동에 쳐 넣어도 가혹한 처사로 보지 않을 세상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 5:13) 이 말씀이 아직도 유효한가요?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uy Now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Terms of UsePrivacy Notice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

Home
Gospel
Question
Blog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