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신상 공개 때문에 못 올린 글에 대한 제 답변만 여기 남겨 두겠습니다.
1. 개인의 가치를 못버리고 출발하는 것은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종교'라고 합니다. '종교'는 오락이고 취미생활이고 결국 농담으로 모아집니다. 농담을 즐기는 자들끼리 모이는 곳이 그곳 교회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사도 바울도 이런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6-10) 사도 바울이 왜 이런 비난을 받았느냐 하며는, 유대인들이 자기가 판단하는 죄에서 출발하니까 사도 바울의 복음 주장은 '죄를 지으면 지을 수록 그것을 용서하신다고 동원되는 은혜가 더욱 풍성해지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죄를 더욱 짓는 것이 우리 인간의 행위다' 라는 논리로 귀결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죄를 지어야지만 죄인이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하나님 관점에서의 죄를 모르는 겁니다. 물론 성령을 못받고 악령받은 채로 사니 자신의 출생 자체가 죄중에서 출생한 것도 알지를 못하고 있는 겁니다.(시 51:5) 십자가는 우리의 근원과 뿌리와 바탕을 까발리는 겁니다. 언제까지? 평생토록! 선악과 과실을 따먹은 영향이 지속되는 우리의 몸과 환경이 만나는 지상이 끝날 때까지 말입니다.
이 사람들의 행위는 자신이 자신을 판단해서 나온 그런 행위를 말합니다. 즉 "내가 보기에 내가 착하다." 혹은 "내가 보기에 나의 행동은 악하다"고 규정합니다. 과연 이런 모습은 자기가 자기에게 빠져서 자신을 신봉하는 즐거움으로 인생을 사는자 들입니다. "나는 나다!" 여호와 하나님을 흉내내게 됩니다. 그러니 그런 자들의 교회나 신앙생활은 그냥 돈내고 오락생활을 하신다고 봅니다. 이들의 오락이 끊어지는 경우는, 오직 자기 통장에 돈 떨어지는 날입니다. 이런 순간이 오면 거침없이 하나님을 저주하지요. 인간들의 바탕은 예수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오직 돈입니다. 악마는 바보가 아니는 점을 일러주세요. 자기 생존, 곧 돈으로 유지되는 자기 목숨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무가치하게 보는 것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들의 생리입니다. 이런 자가 자신을 죄인으로 발견하는 것은 십자가의 영으로 인한 기적입니다.
2.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만 살고 십자가안에서는 죽어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는?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조성된 '죄'와 '의'의 구별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뭐다는 것은 내가 조성해놓은 선과 악, 죄와 의의 구분에서 출발해서는 아니되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기존 인식틀을 고집하는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을 지레짐작해서, "나에게는 이런 죄가 있다. 그래서 죄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히 인정하고 반성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분이다. 죄를 싫어하신다. 그 천국에 나라에 끼어들려면 나에게는 하나님의 거룩과 의로 보충하면 된다."라고 여깁니다. 이런 발상이 바로 예수님을 죽였던 유대인들의 발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윤리틀을 그대로 유지한채 거기에다 하늘이 주는 ‘의로움’을 은혜로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땅의 윤리틀은 하나님의 의를 받을 틀 자체로서 구실을 못합니다. 그것마저 죄라고 폭발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땅에 속했기에 이 '최후의 윤리성' 이외의 것으로 하나님을 마중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예수님 십자가 증거하는 자를 죽일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근원부터 저주받을 자가 되니 이것이 본성상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인간을 사주하는 인간 배후의 인물, 악마가 인간의 발목을 잡는 마지막 무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선악관점을 경유해서 나오기 때문에 생명나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궁극적인 바탕과 뿌리를 자꾸만 커버하려고 합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그 행세가 오늘날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십자가라는 이름으로 되풀이 됩니다. 십자가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죽었는데 그 죽음의 근거가 우리가 납득이 되는 그런 '선악인식바탕'에서의 죄관이 아니라 그런 '우리의 선악인식틀'만큼은 하자없다고 옹호하는 악마적 발상의 지배를 받기에 당연히 지적받아야 될 죄관이 됩니다. 그러니 뭘해도 죄일 수 밖에 없고, 그러기에 뭘해도 감사할 세월만 남아 있는 겁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라"(요일 1:10) 즉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들추어내기 위해 조치가 십자가로서 마감했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의 복음을 통해서 전달된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 중의 일부는 죄고, 일부는 의이고 일부는 중립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은 (칼빈의 주장) 사도 바울이 봐서는 악마 복음이요 저주받은 복음입니다. (갈 1:6-8) 여기서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성경 연구의 달인이라고 자처하는 현대의 많은 신약신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독선가다! 자기가 전한 복음 외의 복음을 인정하지 않고 복음의 다양성도 인정하지 않는 왜곡된 성격의 소유자다. 계시 전달에 있어 사도 바울의 오류와 과오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다른 사도들의 복음이 없었으면 사도 바울의 이런 오류가 안 밝혀질 뻔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말을 전적으로 신봉하지 말라!" 오늘날도 신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난 신학교수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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