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목사님. 그저 도덕 윤리적인 죄가 아니라 행하는 모든 것이, 신앙생활도 죄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는 자는 언약 안에 있는 자라고 이해도 괜찮나요?
현재 이 복음을 전하니 주위 몇 명이 주님 안에서는 더욱 의로 나타난다고 자기를 포기 못하는 부류가 있고요 또 한 부류 몇 명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그런 자들은 언약 안에 있는 자로 봐도 괜찮은가요?
(답변 1)
언약을 이해한다는 것은 본인이 말씀의 범위 안에 놓여져 있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언약을 이해못하는 사람은 관심사가 자기것 안에 맴돌고 있는 사람입니다.
(질문2)
청년 한 명이 이제는 사람 곧 사역자 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겠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자신이 아직 죄인 것도 모르는 상태인가요?
자기가 그동안 신뢰했던 선교단체가 틀리다고 하니 이제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겠다 하고 또한 제가 말하는 것도 또 바뀔 것 같다고 하네요. 그래서 교회 나오기 싫다고 합니다. 이 친구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지 여쭙니다.
(답변 2)
판단의 항목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즉 공부란 특정 인사에 종속당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되기 위해 사역자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리세요.
(질문 3)
이제 판단하는 삶이 귀찮은데 죽을 때까지 그럴 수 없다는 것과 종속이 아닌 실제 자신이 주인이 되는 식으로 배우는 본래 그랬듯이 막사는 삶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을 아는 것이 언약이 작동되는 결과에 속한 건가요?
(답변 3)
그렇습니다.
(질문 4)
판단의 항목과 공부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것이 죄가 된다는 언약에 대한 진리가 좀 어려워했던 교회 안의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언약의 비밀을 이만큼이라도 알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 로마서 5장에서 사망의 왕노릇이 뭘해도 죄인이요 막사는 것인데 뒤에 나오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의인이 된되고 의가 왕노릇한다는 말은 새롭게 내가 뭐가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뭘해도 죄인 것을 알고 용서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의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리고 이어서 6장에서 1,2절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다. 죄에 대해 죽었는데 어찌 더 그 가운데 살겠느냐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막살지 않으려는 자기 의 챙기는 죄애 대해서 죽었다는 말인가요?
(답변 4)
하나님의 관심사는 하나님이 행하신 용서입니다.
(질문 5)
내가 뭘하든 막사는 것이고 그러니 내가 사는 것에는 관심을 안두고 그저 죄 지은 것에 용서 받은 것만 감사해 하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을 알아차린 언약 백성인가요?
(답변 5)
상한 삼령 되지 않으면 언약의 사람이 아닙니다. 천국은 그런 상태로 갑니다.
(질문 6)
복음을 나누니 다 죄인 것 맞다. 그래서 이 죄인인 내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경험이 내 안에 동의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제가 구원은 그냥 덮친다고 말해주고 했는데
상대방이 말하기를, 그 덮쳐지는 것이 나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답변 6)
성령 안에는 십자가 사건의 능력이 들어있습니다. 십자가로 인해 우리 인간은 이미 죽은 자이고 나오는 것은 죄와 의와의 언약 작업 뿐입니다.
(답변 7)
성령이 덮치면 그 십자가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기에 나의 동의나 내편에서의 이해를 갖지 못다는 이미 죽은자임이 깨달아지면서 언약 작업이 나온다는 말씀이군요. 감사합니다.
십자가에 죽는 것은 결국 내가 선택해야 된다 라고 옆에 친구가 자꾸 그러니 머리가 아파서 연락드렸습니다.
(답변 7)
선택은 미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수용되는 결과적 현상입니다.
(질문 8)
목사님, 언약 안에 있는 자는 십자가 외에는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끊은 자인데
물론 그러지 못함에 자신이 죄인됨을 알고 상한 심령이 되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교회 안에 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로 엄청 의식하며 인정 받으려 하는 자매들이 있는데요. 복음에 대한 이해는 최근 들어 그런 분들은 더 있구요.
언약 안에 있다면 죄를 더 알게 되고 용서받는 감사와 상한 심령이 되어 가는데 그런데 여전히 남의 인정으로 살아간다면 아닌 것이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 틀린거죠?
이전 같으면 그렇게 했는데 그러면 또 삶으로 증거를 보이라 하게 되는 것 같아서요.
(답변 8)
사람마다 과거가 다 다르기에 동일한 규정으로 묶을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단지 그런 자아가 바로 나름대로의 죄의 개성임을 알려주세요
(질문 9)
“인간이 처음 만들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금지령이 아닌 선악의 내용 자체에 대해 모르기를 원하는 금지령이었다. 그리고 선악의 지식과는 완전히 무관한 조건 하에 계속 산 생령이 되도록 지음받았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대를 하신 것처럼 들려서요. 그리고 그렇게 선악을 모를 때는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는거죠? 반드시 선악 죄를 겪어야 하는거죠?
(답변 9)
예 인간의 구성요소는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 10)
두 가지를 여쭐 것이 있어서요.
1. 성도의 인생에서 되풀이 되는 예수님의 공생애는 죄를 드러내시고 용서하시는 건가요? 그러므로 죄인 자신을 부인하는 것 맞나요?
2. 성경은 그리스도만 증거하기에 소위 서신서의 명령도 지켜야 될 것으로만 보면 안되고 율법적 작용으로 죄를 깨닫는 것을 넘어 그 명령에 나는 죄인임을 아는 자로서 주되심을 주되심을 고백하는 그것이 곧 구원 얻은 자인 것인지요.
참 친구 한명이 하이퍼 칼빈주의냐 하는데 참고할 한 마디만 해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10)
십자가가 곧 율법의 최종상태가 되니 십자가에서 나온 모든 말씀이 율법적 기능을 발휘합니다. 칼빈은 진리의 기준 자가 아니니 초칼빈주의라는 공격이 의미가 없습니다.
(질문 11)
보통 거급나면 새 자아가 생기는데 이 새 자아의 기능은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는 이 새 자아가 나의 새로운 본성으로 ‘이것이 진짜 나다 그러므로서 말씀대로 살게 된다’ 하는데요.
(답변 11)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결과물입니다. 자아가 자아를 다룰 수 없습니다.
(질문 12)
세 가지 질문이 있어요.
1. 언약 안으로 들어온 자들은 죄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무엇을 해도 의가 안되는 것을 아는 자인데 이런 내용에 대해 받아들지 못하는 자는 아직 구원 못 받은 자로 봐도 되나요?
2. 막산다는 의미는 자기 의지를 발휘하지 않는다는 의미 안에서 구원 안에 있는 자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 맞나요?
3. 사도행전 1장에서 성령세례는 일반적으로 거듭남 이후에 복음 증거하는 의미에서 말하는데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거듭남으로 봐도 되는지 해서요.
(질문 12)
이 세 가지 질문은 같은 질문입니다. 거듭남은 항상 시작점이 아니라 결과성을 두고 말합니다. 이 결과마저 예수님의 작업으로 드러납니다. 이 사실이 고백되어지는 자는 인간의 힘에 의해서 살지 않는 자입니다 .신자입니다.
불신자 여부는 예수님의 개입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질문 13)
구약에 돌이키라 하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들은 자아의 행실 요구가 아닌 변하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하실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답변 13)
인간을 시작점으로 전개하는 것은 본인도 모르는 한계를 결국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상황변화에 의해 그때그때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질문 14)
주님에게 돌아오라는 말씀은 인간이 상황에 따라 변화된다는 죄를 지적하는 건가요?
(답변 14)
상황의 힘에 의해 새 사람되었음을 고백하면서 돌아오게 됩니다.
(질문 15)
목사님, 조금 전에 한 형제가 복음을 들으면서 이전처럼 도덕적인 죄와 싸우는 것을 그쳐서 잠시는 자유했지만 이제는 그냥 지어지고 그렇게 최책감도 안들고 다만 그 죄를 안 지어도 죄인인 그냥 나는 죄인인 것 같다면서 그냥 삽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무서워져서 다시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곳으로 가고 싶한다고 하네요.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답변 15)
자기 행함으로 자기를 지키게 되면 예수님이 계시는 십자가와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이야기해주세요. 이기적인 선함 추구는 스스로 완전함을 목표로 하기에 불교적이라고도 말해주세요.
(질문 16)
습관적인 음란의 죄는 멈춰지지 않는데 그냥 이렇게 살아야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것 또한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 맞나요? 십자가 외에는 자기도 없어지는 것인데 말입니다.
(답변 16) 하나의 과정이라고 하세요. 나중되면 시시해지면서 본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시시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해주세요.
인생의 모든 불행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질문 17)
목사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성도에게 반복 적용되는 예수님으 공생애가 무엇인지 해서요. 예수님의 행하심을 말하는 건가요?
(답변 17)
죄 속에서 죄를 죄되게 하시면서 홀로 미움받으시면서 이루어내시는 작업을 말합니다.
(질문 18)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징계가 사탄을 징계하는 것이라는 것과 사탄의 실체가 드러나면 사탄이 나를 속였습니다. 라고 하는 말은 맞는 말이냐고 묻습니다. 왠지 사탄 핑계대며 자기 죄에 대해서 합리화하는 것 같아서요.
(답변 18)
사단도 하나님의 지시 하에서 움직입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기 위해 사단마저 활용하십니다. 그 결과는 십자가에 대한 관심사로 나와야 합니다. 십자가를 핵심내용으로 해야지 자신의 구원성이 주된 내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질문 19)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1. 예배 드리는 행위, 기도행위를 율법적으로 억지로 했던 자에게 복음은 자유를 주기에 복음 아는 사람은 예배 안드리는 자유로 산다 하는것, 단지 복음을 듣고 개인이 주께 예배드리는 것은 건전한가요? 그러니까 특정 예배 순서 없이 어제 가락모임처럼 복음을 듣고 늘 감사와 상한 심령으로 살아가는 삶으로만 살면 되는 겁니까?
2. 다음주부터 축도를 해야하는데 엄청 어설픕니다. 아무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축도는 왜 해야하고 의미가 무엇인지 해서요.
(답변 19)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폼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원인을 돌려드리는 고백입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 형식을 철폐했다고 해서 바른 예배가 아니요 예배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서 나쁜 예배를 지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원인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자인해야 합니다.
(질문 20)
목사님, 교회 안에서 서로 오해와 착각, 미움의 관계들이 쌓여서 이번 주인에 모두 나누기호 하였습니다. 한 형제는 제가 자기를 제끼고 사람들과 모이고 뒷담화 한다고 사람들에게 가서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저도 화도 나고 굳이 오래를 풀기도 귀찮고 그저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제 아내를 비롯해서 사람들은 저가 교인들의 말을 잘 안 들어준다고 하네요. 제 딴에 복음만을 말한다고 자부하는데요. 이 부분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조언 좀 부탁 드립니다.
(답변 20)
걱정을 미리 하지 마세요 성령의 일은 미리 대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되 모두가 자신에 관해 새삼 돌아보고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 목사님께서 포함해서 말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현장에서 다를 보는 앞에서 다 듣도록 다시 정리해주어서 목회자가 과연 교인 말을 잘 숙지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 처리하고, 그 다음에 목사님의 의견을 말해주세요.
(질문 21)
목사님 안녕 하세요.
여쭈어 볼게 있어서요. 1년 안되게 제가 한 일터에 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복음을 나누었거든요.
젊은 형제가 운영하는 일터에서 세 명의 직원들과 함께 했었는데 잘 듣다가 최근에 그만 나와 달라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 푼도 받지 않고 저는 그저 감사함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이유가 뭔지 힘이 빠지게 만듭니다. 그들 생각에, 지금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야 하는데 뭘해도 죄라니까 일할 기분 안 난다고 해서 오히려 한 직원은 나가버렸습니다.
목사님, ‘뭘해도 죄니까 안 할래’ 이것은 그 일을 통해 자기 의를 삼고 있었다는 것이 맞나요?
언약 안에 있는 자는 죄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하되 자기 의로 삼지 않고 그저 감사함으로 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맞는 건가요?
(답변 21)
죄를 규정하는 기준이 인간 세상에서 알아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죄보다 우선되는 것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기준입니다. 그동안 죄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기준 자체가 복음의 내용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전도란 결과의 양으로 진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합니다.
(질문 22)
목사님, 하나님께서 말씀은 말씀의 해석자와 함께 주신다는 것이 맞는 일인가요?
(답변 22)
예
(질문 23)
믿음에 대해 어쭙는데요. 믿음은 나를 믿지 않는 것이고 주께서 유발하시는 모든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것이 맞습니까?
그리고 어제 목사님을 통해 복음을 들으면서 저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게 제가 견디기 어렵고 복음이라고 전하는데 호응이 없는 것이 신경을 쓰는 이런 자신을 보게 되면서 제 자신이 초라해지네요. 제 주위에 어떤 분은 아직 멀었네 라고 합니다.
(답변 23)
사단이 목사님이 어디에 마음 두고 있는지를 아는 겁니다. 진리보다 세상 영과에 눈독돌이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사단을 움직이십니다. 그게 목사님에 대한 구원입니다.
(질문 24)
구원 이후 이 땅에서의 삶이나 변화된 삶, 창세 전에 이미 완성된 나와 현실에서 나를 가리키는 모든 것이 여전히 인간에 대한 관심을 못 버려서 그런거죠?
(답변 24)
관심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마주치게 하십니다.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경험케 하십니다.
(질문 25)
그냥 거는거네요.^^
그리고 롬 2:6-7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모든 인간은 행한 대로 멸망이고 영생 얻는 자는 썩지 아니함을 구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진정 그런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거죠?
(답변 26)
여기서 말씀하시는 경건은 세상이 저주받은 환경임을 전제로 한 예수님의 행하심입니다. 즉 성도 개인의 경건이 개인구원용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속해 있는 세상 자체가 당연히 멸망당해야 하는 근거로 성도에게 하늘에 대한 관심사를 갖도록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조치하시는 예수님의 일이신 것입니다.
(질문 27)
목사님,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죠? 믿음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닌데 동시에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이죠? 결과로서!
교인 중 몇 명이 저에게, 사람을 믿어줘야 한다라고 하길래 너무 평범한 질문을 드립니다.
(답변 28)
믿음에는 두 개념이 있습니다. 상대방에 호감을 갖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개념입니다. 곧 ‘신뢰’이지요.
반면에 성경에서의 믿음은 예수님 앞에서 인간의 그 믿음(신뢰성)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질문 29)
목사님, 한 형제가 질문을 요청하는데요.
부모님께서 쇠약하신데 자신을 대학교 전도 사역으로 주님이 부르셨다고 하네요.
이런 친구들이 많은데요 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런데 주님의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는 했습니다.
(답변 29)
전도 하겠다는 그 사람을 주님은 전도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도는 전혀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전도는 인간을 ‘통해서’ 행하십니다. 이는 전도행위에 참여된 자가 본인이 계속해서 죄인됨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질문 30)
목사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제가 아는 선교사님의 딸이 읽어 보라는데 목사님 혹시 아는 책인가 해서요.
그리고 이전에는 교인들을 다 구원 안 받은 자들로 생각하며 대했는데 서신서를 보니 바울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 부르는 것을 보아 어떤 자세로 대하는 것이 맞는지 여쭙니다.
(답변 30)
성도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경유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복음 전달 과정에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질문 31)
목사님 또한 허무함의 기쁨이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거죠? 허무라소 죽고 싶은데 주님의 용서로 인한 언약 안에 있는 기쁨을 말하는 건가요?
(답변 31)
예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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